국방 육군

병과, 그것이 알고 싶다 - ⑨ 육군 기갑병과

이석종

입력 2010. 10. 15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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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같이 적 격멸 `지상전의 왕자'


기갑부대는 기계화 보병, 자주포, 육군항공, 방공, 공병 등 제병과가 통합된 전투력을 발휘할 때 더욱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
할 수 있으며 결정적 공세기동으로 전투를 종결할 수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지상전의 왕자’ 전차가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이헌구 기자

육군기계화학교는 과학화 교육훈련으로 훈련 성과를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내 생명 전차와 함께! 번개와 같이!”

 육군 기갑병과는 광야를 누비던 철갑기병의 후예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강력한 기동력, 충격력, 화력으로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결정적 작전을 수행한다.

기갑병과는 단 한 대의 전차도 없이 맨몸으로 적 전차와 맞서야 했던 6ㆍ25전쟁의 뼈아픈 경험과 미군의 M36 잭슨 전차를 지원받아야 했던 과거를 극복하고 기동군단을 비롯해 수 개의 기계화보병사단과 수 개의 기갑여단 등 육군의 핵심 전력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전차와 장갑차를 자체 개발해 전력화하고 일부 수출할 수 있는 수준까지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뤘다.

이 과정에서 정예 기동전사를 육성해 기갑 및 기계화부대 전투력 창출의 산실 역할을 수행한 육군기계화학교는 ‘적과 싸워 이기는 강한 기갑 및 기계화 장병’을 육성하기 위해 우리 군 최초로 담임교육제를 추진하는 등 변화와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기갑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강한 육군, 따뜻한 육군’을 만들어가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 고구려 철갑기병의 후예, 기갑병과

 민족 최대의 강역을 호령했던 고구려는 700여 년 동안 안정적인 국방력을 굳건히 유지했다. 막강한 고구려의 군사력을 지탱하던 큰 축이 바로 철갑기병이다.

기갑병과가 고구려 철갑기병을 계승한다고 하는 것은 막연한 뿌리 찾기가 아니다. 우선 지상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월한 기동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번개와 같이’라는 기갑의 구호는 기갑부대의 이러한 민첩함을 확실히 전달해 준다.

 뛰어난 방호능력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공통점 중에 하나다. 고구려의 독자적 ‘찰갑’은 당시에 독보적인 방호력을 자랑했다. 기갑부대의 주력, K-1 전차는 자체 개발한 특수장갑으로 승무원과 현수장치를 보호한다.

또 K1A1 전차는 특수장갑에 반발용 폭약을 넣어 피탄 시 피해를 최소화하는 복합장갑을 사용했다. 이는 학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방호능력으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기갑병과는 앞선 무기체계와 전술적 운용으로 드넓은 대륙을 호령하며 동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했던 고구려 철갑기병의 후예라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대한민국 육군의 핵심 전투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뼈아픈 경험, 기갑을 탄생시키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총병력 20만 명과 T-34 소련제 전차를 앞세우고 기습남침을 감행해 왔다. 그러나 단 한 대의 전차도 보유하지 못한 우리 국군은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뼈아픈 패배를 거듭하게 되고 급기야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겼으며 이렇다 할 전투도 해보지 못한 채 낙동강까지 후퇴하게 됐다.

 이런 뼈아픈 경험을 통해 전차를 보유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됐고 미군의 지원을 받아 제51ㆍ52전차중대를 모체로 기갑병과가 창설되게 된다. 창설 초기 비록 조직적인 교육훈련과 부대 운용술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위기의 조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베티고지와 백마고지를 비롯해 월비산 탈환전투, 지형능선전투 등 주요 전투에 참가해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두 개의 전차중대로 출발한 육군 기갑병과는 ‘미래 전장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첨단 기동전력을 육성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발전을 거듭해 온 결과 현재 기동군단을 비롯해 수 개의 기계화보병사단과 수 개의 기갑여단 등 지상군의 핵심전력으로 성장했다.


 ◆ 전투를 종결하는 ‘지상전의 왕자’

 보병사단의 전차대대로부터 각 제대별 기갑 및 기계화부대는 지상군의 핵심 기동부대로서 작전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작전에 투입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보병부대를 화력으로 지원할 수도 있다. 기갑 및 기계화부대가 갖는 강력한 기동력, 충격력, 화력이 적 부대를 격멸하거나 적의 전투의지를 파괴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기갑병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전차다. 전차는 기갑병과의 주력 무기체계지만 ‘기갑 = 전차’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전차만으로도 강력한 기동력, 충격력, 화력으로 적에게 공포와 전율을 느끼게 하지만 기갑부대는 기계화 보병, 자주포, 육군항공, 방공, 공병 등 제병과가 통합된 전투력을 발휘할 때 더욱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결정적 공세기동으로 전투를 종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지상전의 왕자’인 전차가 있다.

 공격작전에서 기갑부대는 강력한 기동력, 충격력, 화력으로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에 전투력을 집중해 종심 깊은 적 후방으로 기동함으로써 적의 전투의지를 파괴한다. 방어작전에서는 공세적으로 적을 격멸하기 위해 예비대나 공세행동부대로서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적의 약점과 과오에 대해 전투력을 집중함으로써 성과를 확대하거나 전투를 종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 세계 최고 수준의 전차 개발

 한국군이 전차를 보유하게 된 것은 6ㆍ25 전쟁 중인 1950년 11월 경남 동래에 있던 육군종합학교 교수부에 전차과가 신설되고 M36 잭슨 전차 6대를 미군으로부터 인수해 교육을 실시하면서부터. 한국군에 편제돼 전투에 참가한 유일한 전차인 M36 잭슨 전차는 자주포를 개조, 90mm 포를 탑재해 포탑 뚜껑이 없었던 대전차 방어용 전차로 1944년 미국에서 생산돼 1959년까지 군에서 운용됐다.

 또 기갑병 훈련과 양성을 목적으로 휴전 직전 1953년 5월 15일 육군기갑학교가 창설됐고 정전 후 미국으로부터 6ㆍ25전쟁에 미군의 주력전차로 투입됐던 M4A3E8 전차 38대를 인수해 한국군 기갑부대를 창설했다.

 1961년을 기점으로 주한 미7사단의 주력 전차는 M48A2 전차로 교체되고 주한 미7사단이 운용하던 M47 전차는 한국군 전차부대 증설을 위해 인계돼 1967년까지 400여 대를 보유하게 된다. 그후 1971년 주한 미7사단이 철수하면서 미군이 보유하고 있던 M48A2 전차 전량을 한국군 방어력 강화 차원에서 무상 인수받아 운용하게 됐다.

주한 미2사단이 M48A3 전차를 주력 전차로 운용하면서 1973년부터 1974년까지 미군으로부터 M48A2C 전차를 추가 인수받아 전방 2개 기갑여단의 주력 전차로 운용했다. 미군으로부터 전차를 인수받아 운용하던 우리 군은 고유전차 보유 요구에 따라 1976년 국내 기술진에 의해 전차 국산화를 시작했다. 미군장비인 M48A1 전차를 M48A3KㆍM48A5K 전차로 업그레이드해 야전에 실전배치했다.

 또 1986년 한국 지형 특성에 적합한 전차인 K-1 전차를 생산, 전력화하는 데 성공했다. 서울 올림픽 개최의 의미를 담아서 88전차로 명명된 K-1 전차는 기계화사단과 기갑여단의 주력 전차가 됐고 M48A5K 전차는 일반 보병사단의 전차대대로 조정됐다.

 K-1 전차는 일반적으로 3세대 전차의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사격통제장치는 3세대 전차 중에서 매우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지만 주포를 2세대 전차의 기본 무장인 105mm 강선포를 사용해 파괴력이 부족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 화력 강화를 주목적으로 주포를 120mm 활강포로 교체한 K1A1 전차가 실전배치되면서 우리 군의 핵심 주력 전차로 자리매김했다.

장비에 대한 성능개량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K1ㆍK1A1 전차의 경우 실시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전장관리체계, 피아 혼재된 전투 상황하에서도 우군 사격에 의한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전자식 피아 식별장치, 조종수의 야간 조종술 향상을 위한 열상 잠망경 등을 장착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전장관리체계와 능동형 방호장치와 심수도하가 가능한 세계 최고 수준의 K-2 전차, 일명 흑표전차를 개발해 전력화해 나가고 있다.

 장갑차도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M8ㆍM113 장갑차를 미군으로부터 인수해 운용하다가 1980년대 말부터 국내 기술로 K200 보병탑승 차량을 개발해 실전배치했고 이를 기본모델로 구난용인 K-288 장갑차, 박격포탑재용인 K-242/281 장갑차, 지휘용인 K-277 장갑차 등 다양한 계열의 장갑차를 개발해 운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 장갑차의 제한사항을 극복하기 위해 자동화 지휘통제 시스템과 40mm 주포를 장착해 지휘통제력과 공격력을 강화하고 방호력을 보강한 K21 보병전투차량을 전력화해 야전부대 일부와 기계화학교에서 운용 중에 있다.
 

 ◆ 창의적 사고로 무장한 기동전사 육성

 21세기 교육의 키워드는 ‘창의력’이다. 전투원을 양성하는 군의 교육도 예외일 수 없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전장환경에서 전장상황을 예측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전투원 개개인의 창의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대의 성패를 좌우하는 지휘관의 창의성은 더더욱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육군기계화학교에서 최초로 시행하고 있는 담임교육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담임교육제는 교육생들의 창의력을 계발하기 위한 ‘상황위주 자율학습’ 방법으로, 최소 인원으로 학급을 편성해 학급별 담임교관은 입교 시부터 수료 시까지 학습의 안내자와 멘토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교육생은 스스로 고민하고 연구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교육 방법이다. 이 제도를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한 결과, 교육생들의 전투지휘능력과 창의적 응용능력이 향상됐다. 또 교관과 교육생이 서로 믿고 따르는 사제지간이 형성되고 멘토가 되면서 수료 후에도 교육의 연계성이 지속되고 있다. 교관과 교육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96% 이상이 그 성과에 만족한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 과학화 훈련으로 두 마리 토끼 잡는다

 고유가 시대에 접어들어 전투장비 기동훈련이 제한되고 훈련장 부족으로 평시 훈련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이런 제한사항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과학화 교육훈련 장비다. 기계화학교에서도 포술 및 조종시뮬레이터를 비롯해 전차 다목적 시뮬레이터 훈련기(TMPS) 등 과학화 교육훈련 기반을 조성해 교육을 하고 있다.

 우선 포술 및 조종 시뮬레이터를 통해 주야간, 눈, 비, 안개 등 다양한 훈련상황을 재현해 계절과 기상에 관계없이 실전장환경을 체험할 수 있고 과학적인 분석기법으로 교육생들의 임무수행능력을 평가ㆍ분석함으로써 교육생 스스로 부족한 점을 보완토록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실장비와 동일한 체험이 가능하고 전차소음, 분진, 안전사고 등 민원요인을 해소할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실장비로 훈련할 경우와 대비했을 때 수십 억 원의 예산절감이 가능하다.

 또 전투실상을 간접체험하고 소대 및 개인 전투기술을 숙달할 수 있도록 개발된 TMPS는 올해 안에 시험평가를 마치고 학교교육에 활용할 계획이다.

 TMPS는 피아 편성 및 무기체계 묘사가 가능함으로써 실전적인 전투 상황하 모의전투를 가능하게 하고 특히 승무원별 독립된 조준경 및 잠망경 활용, 단차장 통제하 개인훈련, 직책별 및 단차 간 네트워크 구성으로 단차훈련으로부터 중대 전술훈련까지 모의가 가능해 실전적 상황조치훈련이 가능하다.


◆ 기갑병과 연혁
 1946. 1. 15 남조선국방경비대 발족, 9개 연대를 창설 3개 여단으로 편성
 1948. 1. 1 경기도 수색에 주둔한 제1연대 내에 수색대 창설(기갑부대 시초)
 1948. 11. 25 제1연대 수색대에 M8 장갑차 27대를 인수해 수색단으로 승격(초대단장 소령 이용문)
 1948. 11. 30 국군조직법 제3장 12조에 ‘육군의 병종은 보병·기병·포병·공병·기갑병·항공병·통신병과 헌병 등으로 구성한다’고 명시
 1948. 12. 10 제1연대 수색단이 독립기갑연대로 승격(초대 지휘관 중령 이용문)
 1950. 10월 말 최초의 미군 전차 인수, 육군종합학교에서 교육용으로 미군 M36 잭슨전차 6대 인수
 1950. 11. 10 국방부 일반명령 제90호에 의거 육군종합학교 내 전차과 창설
 1950. 12. 18 최초의 전차 기간장병 교육개시(소위 김종찬 등 장교 10명, 사병 28명)
 1951. 4. 4 육군보병학교(육군종합학교에서 개칭) 내 교도전차대대 창설
 1951. 10. 5 제51ㆍ52전차중대를 모체로 기갑병과 창설(국방부 일반명령 제143호)
 1952. 1. 7 육군보병학교 전차교육대로 개편(초대 교육대장 대령 박종민)
   1952. 4. ~ 1953. 1. 10 소년전차병 모집, 교육 및 참전(퀸고지·베티고지 전투 등에 참전)
 1953. 2. 15 육본 작전국 기갑과 설치(초대 과장 중령 박주동)
 1953. 5. 15 육군보병학교 전차교육대를 해체하고 육군기갑학교 창설(초대 교장 대령 박종민)
 1953. 9. 20 육본 기갑감실 창설(초대 감 대리 중령 조남철)
 1953. 12. 15 제1야전군사령부 기갑참모부 창설(초대 참모 중령 조남철)
 1973. 3. 21 ~ 2007년 수도기계화사단을 시작으로 기동군단·기계화사단·기갑여단 창설
 1995. 4. 1 육군기갑학교를 육군기계화학교로 개편


담임교육제로 `전투 프로' 양성-육군기계화학교장 이재능 준장

◆ 이재능 준장은? 1979년 육사35기로 임관해 전차대대장, 기갑여단 참모장, 기계화보병사단
여단장, 7군단 작전참모, 7군단 참모장, 교육사령부 교훈차장, 육군기계화학교 교수부장 등 전
후방 각지의 다양한 근무경험과 기갑장교로 탁월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다.


 육군기갑병과 장병들의 요람인 육군기계화학교 학교장 이재능(사진) 준장은 ‘기갑’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갑 = 전차’라는 인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 현대전에서 기동력과 화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갑뿐만 아니라 보병·포병·공병·항공·방공 등 제 병과가 힘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병과가 기갑병과와 함께한다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게 이 준장의 설명이다. 이 준장은 “모든 병과는 누구나 기갑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병과의 임무와 특성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많은 전투사례를 살펴보면 전장의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에 ‘상대적으로 얼마나 우세한 전투력을 집중시켰는가?’가 승패를 갈랐음을 알 수 있다. 우리 기갑부대는 전차를 비롯해 기계화보병, 자주포병, 방공, 공병 등으로 편성된 제병협동부대로서 전장의 결정적 시간과 장소에 강력한 전투력을 신속하게 집중시킬 수 있는 부대다.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전장의 핵심국면에서 결정적 작전을 수행함으로써 전투를 종결짓는 부대인 것이다.”

  -기갑병과의 역사와 의미는?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영광스러웠던 시기에 광개토대왕은 철갑기병을 이끌고 광활한 만주대륙을 호령했다. 그들이 초원을 질주할 때 노란 먼지가 하늘을 뒤덮었고 황색 머플러는 기병의 필수품이자 상징이 됐다. 기갑 장병들이 황색 머플러를 착용하는 것은 철갑기병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기갑인의 긍지와 자부심이기도 하다. 강한 군대에는 강한 기병부대나 기갑부대가 존재해 왔다. 우리 기갑병과는 창설 당시에 비해 질적·양적으로 엄청나게 발전했다. 지금 우리 기갑병과와 기갑 및 기계화부대의 발전은 ‘강한 육군, 따뜻한 육군’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며 나아가 우리 민족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학교장으로서 중점을 두고 있는 과제가 있다면?
 “무엇보다 ‘적과 싸워 이기는 강한 기갑 및 기계화 장병을 육성’해 배출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야전에서 즉각 활용 가능하도록 장병들을 교육하고, 무기체계 및 교리발전을 통해 야전 기갑 및 기계화부대 전투력 창출의 산실 역할을 하며, 기갑병과의 문화를 선도하는 학교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에 중점을 둔다. 특히, 우리 군에서 최초로 담임교육제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 담임교육제야말로 우리 육군 장병들의 창의력을 계발해 야전에서 즉각 임무수행이 가능한 전투프로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 확신한다.”

이석종 기자 < seokjong@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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