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보자 海내자
그들의 시간은 바다만큼 강인하고 치열했다
24시간이 모자라기에…1분 1초도 낭비는 없다
꿈 찾는 시간
훈련기간 342시간 수업, 하루 8시간 이론·실습
아침부터 밤까지 함정의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배움의 시간
실전 체험에 당직근무…자유시간 체력 다져
누워서도 예·복습…담금질은 멈추지 않는다
24시간이 모자라기에…1분 1초도 낭비는 없다
‘2025년 해군순항훈련’의 일정은 총 105일이다. 이 기간은 해군사관생도들이 임관 전 거쳐야 하는 관문이자 미래의 정예 해군 장교로 성장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생도들은 총 342시간의 수업을 듣는다. 상륙을 제외하고 항해 내내 매일 8시간씩 이론과 실습으로 자신을 담금질하며 해군 장교의 꿈을 키워 나가고 있는 생도의 하루를 쫓아가 본다. 이주형 기자/사진=부대 제공
06:30 하루의 시작 - 아침점호
“총원 OOO명, 이상 없습니다.”
한산도함 격납고. 대대장 김태현(23) 생도의 보고를 시작으로 아침점호를 했다. 점호의 목적은 인원 파악과 건강상태 확인. 소대별로 집합 정렬을 완료하고 소대장 생도가 인원 이상 유무를 확인한 뒤 중대장 생도에게, 중대장 생도는 대대장 생도에게, 대대장 생도는 당직 훈육관에게 해당 사항을 보고하는 방식이다. 훈육관 오지은 소령은 당일의 주요 사항과 전날 공지에서 달라진 것을 전파했다. 아울러 “감기 환자가 많으니 개인 위생에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김 생도 주관으로 간단한 스트레칭과 팔굽혀펴기를 했다. 팔굽혀펴기 개수는 70개. 처음에는 20개씩 하던 팔굽혀펴기가 주 단위로 5개씩 늘어나 지금에 이르렀다. 생도들이 긴 항해에 적응하고 체력도 강화된 것을 감안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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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 배우고 숙달하다 - 오전 수업
오전 일과가 시작됐다. 첫 수업은 전술기동. 생도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시간이다. 전술기동판에 교관이 불러 주는 좌표에다 공식을 적용하고 컴퍼스와 삼각자를 이용해 문제를 푼다. 계속 달라지는 좌표에 따라 항로를 변경하는 일이 만만찮다. 몇 번을 거듭해 왔지만, 아직도 쉽지 않다. 실습으로는 시각신호와 전투체계, 항공기 통제 등의 수업을 했다. 인원이 많아 3개 조가 각각의 교육장에 돌아가며 수업하는 방식이다. 그래도 처음보다 많이 나아졌다는 게 김 생도의 솔직한 심정이다. 초반에는 전투체계가 어떤 절차대로 진행되는지 잘 알지 못했다. 당연히 실수도 잦았다. 사통장과 추진기관장 등 군사특기장에게 A부터 Z까지 이론을 배우고, 그것을 기반으로 엔진을 직접 만져 보고 콘솔 조작을 하면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도도 높아지고 조금씩 익숙해졌다. 조함 시뮬레이션과 함 내 방송 절차 등도 실습을 반복했다. 그 결과 실제 투입 시 어떻게 지휘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방안을 생각할 수 있는 알찬 시간이 됐다.
10:30 실전 체험으로 - 전투배치
전투배치 장소는 다양하다. 대공전, 대잠전, 손상통제 등 언제·무슨 일이 어떤 장소에서 벌어질지 모르는 까닭이다. 승조원들이 그날그날 각 훈련 상황을 미리 조성하고, 전투지휘실(CCC)에서 콘솔에다 상황을 입력하고 함교에선 그에 맞는 전체적인 시나리오까지 마치면 이제 전투배치 준비 끝.
이날 전투배치 상황은 대공전이다. 적 항공기가 지속 남하 중이라는 정보가 들어오자 김 생도는 즉각 함교로 이동했다. 다른 생도들은 CCC·기관실 등에 맞는 복장을 착용하고 정해진 장소로 배치됐다. 이어 함교에서는 전체적인 지휘를, CCC에선 레이다·유도탄과 같은 대응 무기체계 운용을 하는 등 각 개소에서 상황에 맞는 절차가 순서대로 이뤄졌다. 현재 전투배치는 이렇게 각각의 단일 상황으로만 진행된다. 함 피격으로 인한 손상통제까지 여러 상황이 연계돼 이어지면 바로 종합전투훈련이 된다. 40여 분에 걸친 전투배치훈련이 끝나면 이를 자세히 지켜봤던 생도들의 질문이 폭풍처럼 쏟아진다. “상황판 작성은 어디에서 어디까지 해야 합니까?” “포 재장전은 어떻게 합니까?” “화재 경계구역 설정 범위와 기준은 어떻게 됩니까?”
13:00 이론과 실습 한 몸에-오후 수업
익수자(溺水者)를 상정한 종이 더미(dummy)가 빠졌다. “함미 좌현 익수자 발생.”
즉각 생도들이 투입돼 바다 수색에 나섰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익수자를 발견하자 방향을 알리는 기류(旗旒)가 올라가고 구명환을 던져 구조하는 것으로 인명구조훈련은 끝났다. 위험 상황이 있어 비록 참관만 하는 상태이지만 순서를 하나라도 놓칠세라 지켜보는 생도들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다. 다음으로 직무별 이론교육과 분대장 직무 체험 등이 차례로 이어졌다.
주말에도 짧지만 수업이 편성돼 있다. 오전과 오후 각 1시간씩 모두 2시간이다. 실무에 도움이 되는 내용 위주로 열린다. 선배 장교와의 만남이 대표적이다. 이 시간엔 부사관과의 관계 정립 및 부대 관리에 관한 주제 토의·발표도 이뤄진다. 『초임 장교 길라잡이』라는 책자를 토대로 보안 문제 등 미래 임관 후의 생활을 알아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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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 정을 쌓고 피로 푼다-저녁
함에서의 식사시간은 오전 7시와 11시30분, 오후 5시다. 오후 7시30분엔 야식을 먹는다. 항상 흔들리는 바다 위 함상에서 생활하므로 체력 소모가 많다. 따라서 그 이상으로 보충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왕성한 식성을 자랑하며 동기들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덧 쌓였던 순항훈련의 피로도 가신다. 당직근무가 없으면 이후부터는 자유시간이다. 체력을 다지고, 개인 정비를 하며, 종교활동도 한다. 한 치도 낭비되는 시간은 없다. 고생하고 힘들어하는 만큼 전우애도 피어난다.
20:00 당직근무 체험과 지휘근무자회의
당직은 평일엔 2시간, 주말에는 8시간을 선다. 함교, CCC, 통신실, 중앙조종실 등이 대상.
항해 중일 때 당직자들이 근무를 어떻게 하는지 승조원들로부터 배운다. 평시 상황이란 점에서 전투 상황일 때를 가정한 오전의 전투배치 시간과 비교된다. 생도들은 임관 후 대부분 첫 직책으로 통신관 임무를 수행하기에 당직근무와 관련된 내용은 많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지휘근무자회의는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에 한다. 교관들과 대표 생도들이 모여 앞으로의 할 일 등 지침을 전달받고 고민과 애로사항 등을 건의한다. 하지만 오늘은 야간전투 종합훈련으로 대체됐다. 순항훈련 기간 계획된 3번의 훈련 중 두 번째다. 확실히 첫 번째 훈련보다 움직임이 빨라지고 주저함이 줄었다. 그만큼 각종 전투 상황 발생에 따른 대처가 능숙해진 셈이다. 김 생도는 이번 훈련에서 작전관(TAO)으로 대함과 항공 지휘통제 임무를 담당했다. 띄워 준 모의표적을 공격·방어하며 그동안 습득했던 능력을 여지없이 발휘했다. 잘했다는 듯 얼굴에 스친 교관의 미소와 칭찬은 자신감을 북돋게 한다. 세 번째 마지막 훈련은 승조원들의 지원 없이 직접 생도들이 주도적으로 하게 된다.
전술기동을 가르치는 오석준 준위는 “배우고자 하는 생도들의 열의와 습득력이 매우 높아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며 “그동안 쌓아 온 노하우를 빠짐없이 전해 주겠다”고 밝혔다.
21:45 내일을 위한 마무리 -저녁점호
저녁점호를 했다고 하루가 끝난 것은 아니다. 평가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바쁘다. 그날그날 배운 것을 복습하고, 다음 날 익힐 내용을 예습하는가 하면 교관을 찾아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물어보기도 한다. 평가에 따른 순위는 중요하다. 하지만 알게 된 것을 체득해 실전에 투입되면 바로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욱 중요하기에 생도들이 자습하는 함 내 대형 강의실의 불빛은 자정까지 꺼지지 않는다.
진해로 복귀하기까지 채 열흘이 남지 않은 지금, 생도들은 바다에서 꿈꾸고 바다에서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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