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과 AI, 전장의 공식이 바뀐다
‘하늘에서 펼쳐지는 그물의 마법’ 드론을 덫에 빠뜨리는 기술
우크라 ‘어망 터널’ 효율적 방어 입증
대공포탄·미사일 대비 경제성·안정성
파괴 않고 포획…적군 정보 획득 유리
그물 발사해 떨어뜨리는 장비도 속속
‘스마트·에코 그물’ 등 첨단 기술 접목
운용 한계 분명…‘최종 방어선’ 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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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의 한 도로에 기묘한 터널이 생겼다. 양쪽에 철제 기둥을 세우고 그 위를 낡은 어망으로 덮은 구조물이다. 덴마크 어민들이 버린 폐그물로 만든 이 ‘어망 터널’은 겉보기엔 초라하지만 러시아 1인칭 시점(FPV) 자폭드론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있다. 고가의 미사일로도 잡기 어려운 드론이 몇만 원짜리 폐그물에 걸려 추락하는 광경은 21세기 전장의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기술의 시대에 가장 원시적인 도구가 가장 합리적인 방패가 된 것이다. 이 전술 안에는 물리학이 숨어 있다. 드론은 네 개의 프로펠러가 완벽한 회전 균형을 이뤄야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다. 그런데 그물에 한 개의 프로펠러만 걸려도 회전축의 균형이 깨지고, 각 운동량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나머지 프로펠러는 계속 회전하지만, 한쪽에서 생긴 저항이 전체 기체를 비틀어 제어력을 상실시킨다. 시속 100㎞로 비행하던 드론이 그물에 닿는 순간 프로펠러는 끊기고 기체는 회전하면서 추락한다. 마치 달리던 사람이 갑자기 줄에 걸려 넘어지는 것과 같다.
그물의 또 다른 장점은 ‘선택적 저항성’이다. 작은 새나 곤충은 통과시키지만 일정 크기 이상의 드론은 걸리도록 설계할 수 있다. 망의 간격을 조절함으로써 어떤 크기의 표적을 차단할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현장 보고에 따르면 FPV나 소형 정찰 드론을 막기 위해 수십㎜(약 3~6㎝) 크기의 망이 자주 사용된다. 이는 조류나 작은 물체를 통과시키면서도 소형 드론의 프로펠러를 확실히 걸어 제압할 수 있는 크기다. 이 단순한 구조물이 고도로 복잡한 전자식 방어체계를 보완하며 ‘비용 대비 효율’이라는 현대전의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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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과 안전성은 이 전술의 가장 큰 무기다.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는 그물은 스웨덴의 비영리단체 ‘Protect Our Sea’가 덴마크 어민에게서 기증받은 폐어망으로, 자재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설치 또한 간단하다. 몇 개의 기둥과 로프만 있으면 도로 위에 수십 미터 길이의 방호 터널을 만들 수 있고, 해체·재설치가 쉽다. 반면 대공포탄이나 미사일 한 발의 가격과 비교하면 그물은 사실상 ‘무한 탄약’에 가깝다.
또한 그물은 표적을 파괴하지 않고 ‘포획’하기 때문에 부수적인 피해가 없고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포획된 드론을 해체하면 사용된 부품, 통신 모듈, 글로벌위성항법시스템(GNSS) 항법 구조, 심지어 내부 프로그램 코드까지 분석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방어 수단을 넘어 정보전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도심이나 민가 인근에서 사용해도 폭발이나 파편 피해가 거의 없다.
흥미롭게도 이런 방어법은 러시아군이 먼저 사용했다. 2023년 바흐무트 점령지 일대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소형 드론 공격을 막기 위해 주요 도로 위에 어망 터널을 설치한 장면이 포착됐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를 제한적으로만 운용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이 아이디어를 전략적으로 발전시켜 전선 주요 보급로 전체에 ‘그물 회랑(Net-corridor)’을 구축했다. 스웨덴의 폐그물 기증이 계기가 돼 환경 프로젝트가 전쟁의 방패로 변모한 셈이다. 영국 국방부는 2024년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의 어망 방어선이 러시아 FPV 드론의 공격 효과를 약 30% 이상 감소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물은 고정식 방어에 그치지 않는다. 드론이 드론을 잡는 능동형 ‘포획 드론’ 개념이 현실화되고 있다. 일본 경찰은 2016년 불법 비행 드론을 제압하기 위해 3×2m 크기의 그물을 매단 대형 드론을 공개했다. 그물 가장자리에 달린 추가 균형을 맞추고, AI가 비행 각도를 계산해 표적 위로 정확히 덮어씌운다. 이 시스템은 2020년 도쿄 올림픽 기간 중 실제 운용돼 주요 경기장 상공에서 불법 드론을 포획했고, 80% 이상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단, 강풍이나 야간에는 효율이 떨어지는 한계도 함께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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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오픈웍스 엔지니어링은 ‘스카이월(SkyWall) 100’을 개발해 경찰과 공항 보안팀에 배치했다. 이 장비는 압축 공기로 그물탄을 발사해 드론을 감싸 낙하산과 함께 안전하게 지상으로 내리는 방식으로, 숙련된 사용자는 90% 이상의 명중률을 보인다. 미국의 포르템 테크놀로지스는 자율 비행 요격 드론 ‘드론헌터(DroneHunter)’를 선보였다. 시속 80㎞로 접근해 그물을 발사, 표적 드론을 공중에서 직접 포획한다. 미 국방부는 2024년 콜로라도 팰컨 피크 실증 행사에서 이 시스템을 공개하며, 부수 피해를 최소화하는 물리적 요격 체계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 빠르게 합류하고 있다. 2023년 3월 한화시스템은 2m급 드론을 실제로 포획하는 시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그물 포획형 안티드론 시스템’은 한화시스템의 열상감시장비와 미국 회사의 드론헌터 기술을 결합한 형태로, 3㎞ 밖에서 표적을 탐지해 시속 90㎞로 접근 후 그물로 안전하게 포획했다. 포획률은 90% 이상으로, 파편 피해 없이 드론을 원형 그대로 회수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그물 자체에도 첨단기술이 접목되고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매듭마다 미세한 압력·진동 센서를 내장해 드론이 걸리면 무게와 진동 패턴을 분석하고, 인공지능(AI)이 아군·적군 드론을 구별하는 ‘스마트 그물(Smart Net)’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전후 회수가 어려운 방어 자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분해성 재질로 만들어 자연 분해되는 ‘에코 그물(Eco Net)’ 연구도 병행되고 있다. 이처럼 전통적 방어 수단이 인공지능·센서·친환경 기술과 결합하면서 그물은 단순한 로프가 아니라 첨단 방공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물론 한계도 존재한다. 강풍·비·안개 같은 기상 조건에 따라 성능이 달라지고, 고속 표적에 대한 즉각 대응은 어렵다. 따라서 그물은 단독 운용보다 레이다·전자전·레이저·산탄총 등과 결합된 다층 방어망의 하위체계로 운용될 때 가장 효율적이다. 실시간 탐지·추적·요격의 연계가 완성될 때 그물은 ‘최종 방어선’의 역할을 확실히 수행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장은 단순함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인류가 사용해 온 그물이 첨단 드론 전쟁의 방패로 부활했다. 기술이 복잡해질수록 단순한 해법이 가장 현명하다. 전장은 점점 하늘로 확장되고 있지만 승부는 여전히 땅 위의 상상력에서 결정된다.
다음 회에서는 이러한 단순한 원리가 어떻게 산탄총·레이저·전자전 장비 등과 결합해 ‘여러 겹의 방어막’을 이루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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