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또다시 부사관이었다

입력 2025. 12. 05   15:50
업데이트 2025. 12. 0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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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예비역 육군원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군협력처장
이미선 예비역 육군원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군협력처장



34년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며 부사관 통합전역식에 참석했다. 지난 5월 처음 시행된 이 행사는 희망자에 한해 진행된다고 해 신청 여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마지막 근무지가 서울이었기에 전북 익산의 육군부사관학교까지 가는 길은 멀었고, 남군들과 달리 이제는 사라진 여군학교가 모교이기에 낯설기도 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 신청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홀로 계신 95세 아버지께 전역하는 딸의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서다. 34년 전 임관식 때 어깨에 계급장을 달아 주셨던 아버지께 마지막 신고를 하고 싶기도 했다. 그 순간만큼은 꼭 함께하고 싶었다. 또한 그동안 감사했던 지인들에게 군 생활의 마침표를 알리는 의미도 있었다. 

행사 당일 부사관학교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비로소 ‘정말 전역하는구나’라는 실감이 들었다. 정문 초병의 힘찬 경례가 “당신의 34년을 존경합니다”라고 외치는 듯했고, 정갈하게 정비된 행사장과 따뜻한 안내에서 군의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포토존에선 가족과 지인들이 함께 축하의 덕담을 나누며 사진을 남겼고,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은 대견하다는 듯 바라봐 줬다. 5명의 전역자마다 전담 간부가 배정돼 행사 전 과정을 세심히 챙기며 촬영하는 모습에서 ‘전역자를 진심으로 예우한다’는 군의 마음이 전해졌다.

전역식은 약 2시간 동안 이뤄졌지만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전역자가 전역사를 낭독하는 순간부터 가족의 화답, 군악대 연주, 각 종교 군종장교의 축하기도까지 모든 프로그램이 전역자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그 속에서 지난 세월의 군 생활이 떠올랐고, ‘내가 이 위대한 일을 해냈구나’ 하는 자부심이 차올랐다. 특히 부사관학교장님의 축사를 들으며 그동안 묵묵히 해 왔던 일이 국가 안전보장을 위한 신성한 사명이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많은 부사관이 마지막 근무부대에서 짧은 신고와 인사로 전역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통합전역식은 그동안의 군 생활을 되돌아보며 진정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지금도 후배 부사관들에게 “꼭 통합전역식을 신청하라”라고 권한다. 군인은 신고로 시작해 신고로 마무리하는데 그 마지막 신고만큼은 자신과 가족, 군을 향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 돼야 한다고 여긴다.

전역 후 7일째 되는 오늘, 감사하게도 서울사이버대 군협력처장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여전히 군과 밀접한 일을 이어 가며 부사관으로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데 감사하다. 젊음을 바친 군과 부사관을 여전히 사랑하며, 이젠 그 사랑을 되돌려 줄 차례라고 생각한다. 군복은 벗었지만 내 안의 부사관 정신은 여전히 단단히 서 있다. 그 시작과 끝에 ‘부사관 통합전역식’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없이 큰 영광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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