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을 ‘삼촌’이라 부르던 최측근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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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의 죽음은 여전히 ‘북한 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혹시 아직 살아 있는 것 아닐까?” “처형 장면 자체가 쇼잉 아니었나?” 등은 북한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질문입니다. 실제로 로이터·AP 등 외신도 당시 “사진과 영상이 제한적으로만 공개돼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 어렵다”(로이터·2013)고 기록했습니다. 학계에서도 “북한 엘리트 처형은 공포정치의 상징이자 내부 결속장치”라는 분석이 주류입니다.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북한 내부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봤던 ‘장성택 라인’의 최측근을 모셨습니다.
장성택을 진짜 ‘삼촌’처럼 부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 노희창 박사입니다. 노 박사의 가족과 장성택은 집안 대대로 인연이 깊었습니다. 노 박사의 친척이 협주단 단장으로 장성택과 절친한 사이였기에 서로 스스럼없이 ‘삼촌’ ‘조카’라고 부를 정도의 친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노 박사는 북한에서 중앙당 행정부 대외건설 지도국 당비서였습니다. 말 그대로 장성택의 직속라인에 있었던 실무 책임자였습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고 합니다. 장성택에게 “삼촌,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마디만 해도 그 말이 바로 인사조치로 이어질 만큼 영향력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노 박사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장성택의 사적인 면모도 얘기했습니다. 악기를 잘 다루는 다재다능함에 운동 실력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보고?지시?실행’이 빠른 현장형 스타일이어서 실무진의 고충을 누구보다 먼저 파악하는 타입이라고 전합니다. 즉 ‘정치형 권력자’라기보다 현장을 챙기고 바로 실행하는 실무형 리더였다는 것입니다.
북한 속담에 “처남과 매부 지간이면 나라도 세운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장성택과 김정일의 관계는 형제 이상으로 끈끈했다고 합니다. 이 절대권력을 쥐고 있던 장성택이 2013년 말 전격 체포됐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 북한 내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외신도 “김정은 체제 안정성이 가장 크게 흔들린 순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장성택이 체포되던 날, 북한 내부에선 곧바로 ‘소환작전’이 시작됐습니다. 그의 핵심 측근들을 찾아 일괄적으로 데려가는 작업이었죠. 명단 안에는 노 박사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체포조가 자신을 찾으러 다닌다는 소문을 들은 그는 휴대전화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원시림으로 숨어 들어가 3개월을 버티는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먹을 거라곤 나뭇잎, 물, 잡히는 작은 동물이 전부. 북한의 혹독한 겨울을 맨몸으로 지나며 살아남기 위한 본능만으로 버틴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노 박사의 새로운 삶. 극적으로 우리나라에 오게 된 이야기까지 전말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장성택의 죽음은 지금도 수많은 미스터리를 남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미스터리도 ‘증언’보다 강한 증거는 없습니다. 오늘 최측근이 들려줄 이야기 속에서 북한 권력 핵심의 생생한 현실을 함께 확인해 보시죠.
‘페이스:北(북)’ 115회는 8일 오후 8시에 방송됩니다. 재방송과 KFN 유튜브 채널로 다시 보실 수도 있습니다.
박새암 KFN ‘페이스:北’ MC·강남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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