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위장에는 위장…기만 정보 흘리고 가짜 신분으로 유인

입력 2025. 12. 05   15:57
업데이트 2025. 12. 0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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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그들이 온다
위장신분 요원 활용한 스파이 체포작전

中 정보국, 현역 병장 포섭 정보 요구
방첩사, 오히려 위장신분으로 공작
공작원 접선 유도하고 국내서 체포
군사정보에 대한 외국 수집활동 강화
관련 조항 개정·신분 조사 강화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간첩 접선하러 입국한 중국 스파이

지난달 11일 군사법원은 중국 정보기관에 군사정보를 넘긴 육군병장 A씨에게 일반 이적과 군사기밀 누설 등의 혐의를 적용해 징역 5년, 추징금 1800만 원을 선고했다. 앞서 10월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현역 병사를 포섭해 우리 군의 기밀을 빼돌리려 한 중국인 B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공소사실 등을 종합해 보면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연합참모부 정보국은 2023년 7월경부터 우리 육군 현역 병장이던 A씨에게 접근해 군사기밀 수집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350만 원을 송금하며 ‘73주년 인천상륙작전기념 한미 연합훈련’ 관련 정보를 요구했다. A씨가 일부 내용을 전달하자 이후 손목시계·단추 등으로 위장된 비밀 촬영 장비를 전달하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운용체계와 주한미군 동향 정보를 추가 수집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스파이들의 전형적 비밀접선 기법인 무인수수소(Dead Drop: 서로 만나지 않고 미리 정한 장소에 문건·금품·무기 등을 숨겨두면 상대방이 다른 시간대에 수거하는 방법)를 활용했다. A씨는 지난해 8월 휴가 기간에 베이징을 방문, 중국군 정보요원과 만나 스마트폰 IP전송프로그램을 통해 안전하게 비밀을 전달하는 방법을 교육받기도 했다.

이후 A씨는 한미 연합연습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 훈련 관련 문서를 부대 내 PC를 활용해 보냈다. 그가 보낸 문건은 미군이 우리 군과 공유한 것으로, 주한미군 주둔지 명칭과 병력 증원계획, 유사시 정밀타격 대상이 될 수 있는 표적 위치 등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연합훈련 담당자의 소속, 계급, 성명, 연락처 등 중국 정보기관이 타깃으로 설정할 수 있는 중요 개인정보와 한미연합사 교범 목록 등도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A씨가 8차례에 걸쳐 기밀을 빼돌리고 받은 대가는 7차례에 걸쳐 전달된 1800만 원이었다고 한다.

국군방첩사령부는 군사기밀 유출 첩보를 입수하고 A씨를 체포한 뒤 6개월 이상 위장신분으로 방첩공작을 진행해 지난 3월 접선을 위해 제주도로 입국한 중국인 B씨를 체포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4월 B씨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B씨가 우리나라 군사기밀을 탐지한다는 확정적 의사를 갖고 수차례나 입국했다”며 “대한민국의 안전에 중대한 위협이어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첩보수집 공작에 대응한 성공적 방첩공작

인간을 활용한 스파이 활동인 휴민트(HUMINT)의 기본 공작체계는 정보기관 정식 직원인 공작관(Case Officer·Spy Handler)과 그가 포섭해 활용하는 공작원(Agent)으로 구성된다. 공작원의 종류는 직접 정보 소스에 접근해 첩보를 수집하는 공작원(Collection Agent)뿐만 아니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는 공작원(Access Agent), 여론 조작과 선전 등 영향력 행사를 위한 공작원(Influence Agent) 등 임무와 역할에 따라 다양하다.

공작관과 공작원이 직접 접촉할 경우 어느 한쪽이 방첩기관 감시를 받고 있을 때의 노출 위험을 피하고 발각될 경우에도 공작 상부선과의 연계성을 차단하기 위해 중간 연락책(Cut-Out)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번 사건의 중국인 B씨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B씨는 대만에서 유학하다 중국군 스파이 조직에 포섭돼 대만의 반중 단체, 대만독립단체 동향 등을 수집했다. B씨가 포섭된 중국군 스파이 조직은 포섭책, 연락책, 회계원 등 조직 체계를 갖췄다고 한다. 이들은 2022년 12월부터 우리 군 병사들의 단체 채팅방에서 정보원을 물색하는 등 관련 정보 수집을 시작했다. 2023년 7월 A씨를 포섭한 중국 정보기관은 처음 보내온 정보 수준이 낮았음에도 원고료 명목으로 돈을 보내면서 관계를 발전시켜 오다가 같은 해 10월부터는 보다 전문 기법을 사용하기 위해 비밀 촬영 장비를 지원했다. 대가 지급도 송금이 아니라 무인수수소 방식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후 A병장이 적발됐고, 활동이 지연되자 공작원을 한국에 보내 직접 접촉을 통한 신뢰 확보로 관계를 발전시키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인 B씨가 지난해 5월 31일 제주공항으로 입국해 접선 장소인 펜션에 도착했을 때 그를 기다리던 건 위장신분의 방첩 요원이었다. 중국 정보기관은 휴대전화 보안프로그램, 5000달러의 현금, 현금카드 등을 전달하고 핵 작전지침 자료와 한미연합훈련 관련 자료 등 고급 정보 수집을 지시했다. 지난 1월에는 한미연합훈련 내부 평가, 북한 남침에 대비한 한미연합작전계획인 ‘작계5030’ 관련 정보 등의 수집을 지시하며 “3월에 접선하자”고 제안했다.

3월 27일 제주도로 입국한 B씨는 위장신분의 방첩 요원과 만나 군사기밀 2건이 담긴 USB를 넘겨받은 뒤 현장에서 체포됐다. 방첩공작 과정에서 전달된 기밀은 21건, 금품은 우리 돈 3320만 원과 1만2000달러라고 한다.

방첩 공작은 상대 정보기관의 의도와 역량을 파악하고, 기만 정보를 제공해 오판을 유도하는 등 매우 가치 있는 정보활동이다. 특히 상대국 공작원을 국내로 유인해 체포하는 것은 드문 일로, 이번 작전은 매우 성공적인 방첩공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간첩죄 개정과 군 방첩 강화 필요

이번 방첩사의 공작은 대단히 훌륭했지만 조국을 배신한 병사와 외국 스파이 조직의 일원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된 것은 가벼운 처벌이라는 지적도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재판부는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정보요원과 세 차례 접촉하고 이적을 대가로 상당한 금액을 수수한 사실, 장비를 무단으로 영내에 반입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한 점 등 죄질이 매주 좋지 않다”고 질책했다. 그런데도 처벌이 약한 것은 우리 형법이 ‘적국’을 위한 간첩행위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형량이 훨씬 적은 군사기밀보호법을 적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관련 조항을 개정해 적과 우방이 따로 없는 치열한 국가 간 정보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군사정보에 대한 외국의 수집 활동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 군 방첩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작년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이 중국 국가안전부에 포섭돼 흑색 요원 명단과 공작계획을 유출한 사건과 지난해와 올해 발생한 중국인들의 해군기지 미군 항공모함 및 공군 비행장 군용기 정밀 촬영 사건 등도 중국의 우리 군에 대한 공세적 정보활동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주한미군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이번 사건에서도 중국 스파이가 요구한 정보에는 사드 운용체계, 대만 정세, 한미연합훈련에 관한 정보 등이 포함돼 있으며, 직접 “미군에 관한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추가적인 군사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군내 휴대전화 및 SNS 사용에 대한 보안지침 등 제도를 개선하고, 방첩 교육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또한 복무 기간이 짧고 단순 업무를 수행한다고 병사들의 신원조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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