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스 언박싱] 뜨거운 설전을 벌이다

입력 2025. 12. 02   16:54
업데이트 2025. 12. 0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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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포스 언박싱
⑧ 첫눈이 오면 소집되는 부대가 있다?

눈과 함께 나타난다, 활주로 5분 대기조 제설작전 통제본부
열기로 증발시킨다, 전투기 심장 품은 비밀병기 SE-88

활주로 제설차 SE-88, 퇴역 전투기 엔진 장착
체급따라 시간당 최대 축구장 90개 넓이 처리
회전식 청소기 트럭 ‘스노플라우’가 잔설 처리
엔진 쿨링타임 준수·강풍 시 바람 등지고 운행
‘제설보다 중요한 안전’ 10계명 명심 또 명심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면 공군비행단에는 특별한 부대가 창설된다. ‘하얀 악마’라 불리는 눈과의 전쟁에서 최선봉에 서는 부대, 바로 제설작전 통제본부다. 이들은 눈이 오지 않는 봄·여름·가을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첫눈이 오는 순간, 그 어떤 부대보다 빠르게 소집돼 활주로에 등장한다. 사람들이 첫눈의 낭만을 즐길 때, 비상대기 태세로 돌입하는 이들의 정체를 에어포스 언박싱에서 소개한다. 임채무 기자/사진=공군 제공 

고성능 활주로 다목적 제설차 SE-88은 체급에 따라 SE-88P(대형), SE-88F(소형)로 나뉜다. 사진은 SE-88P가 제설작전을 하고 있는 모습.
고성능 활주로 다목적 제설차 SE-88은 체급에 따라 SE-88P(대형), SE-88F(소형)로 나뉜다. 사진은 SE-88P가 제설작전을 하고 있는 모습.



기상청이 예보한 2025~2026년 겨울은 그야말로 ‘변덕’ 그 자체다. 평년과 기온은 비슷하겠지만, 대륙고기압의 확장으로 기습 한파와 폭설이 롤러코스터처럼 오갈 전망이다. 특히 이달과 다음 달에는 찬 공기가 기습적으로 유입되면서 한파와 함께 서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눈이 내릴 가능성이 있다. 

제설작전은 육·해·공군과 해병대 모두 하는 일이지만, 공군의 제설작전은 그 무게감이 다르다. 활주로와 유도로에 쌓인 눈과 얼음은 마하의 속도로 이착륙하는 전투기에 치명적인 흉기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민간 항공기와 같은 활주로를 쓰는 곳도 있어 비행단의 제설작전은 여행객들의 안전과도 직결된다. 각 비행단이 동계가 시작되는 11월 중순부터 선제적으로 제설작전 통제본부를 가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상 통제본부는 기지방호전대장을 필두로 장비운영조, 지원조, 정비조 등으로 구성된다. 통제본부는 평시 기본 임무를 수행하다가도 눈이 올 징후가 포착되면 즉시 소집돼 비상대기에 돌입한다. 쉽게 얘기해서 눈과 함께 나타나는 5분 대기조인 셈이다.


공군20전투비행단SE-88F가 활주로를 제설하고 있다.
공군20전투비행단SE-88F가 활주로를 제설하고 있다.


■ 통제본부의 비밀병기 ‘SE-88’

육군이 눈을 쓸고, 해군이 눈을 녹인다면 공군은 눈을 ‘증발’ 시킨다. 통제본부의 비밀병기 SE-88 덕분에 생긴 말이다. SE-88의 정식 명칭은 ‘고성능 활주로 다목적 제설차’. SE-88은 1988년 공군군수사령부가 프랑스 장비(TS-2)를 벤치마킹해 독자 개량한 ‘K밀리터리’의 원조 격 모델이다.

겉모습은 투박한 트럭 같지만, 그 속에는 전투기의 뜨거운 심장이 살아 숨 쉬고 있다. 퇴역한 F-4 팬텀(J79 엔진)이나 F-5(J85 엔진)의 엔진을 장착해 만든 SE-88은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400~500도의 열기로 활주로의 눈을 순식간에 녹이고 증발시킨다. 일반 제설장비 6~8대가 달라붙어야 할 면적을 단 한 대가 처리하는 괴물 같은 능력 덕분에 공군비행단에서 전역한 예비역들에게는 이른바 ‘용의 숨결(드래곤 브레스)’로 불리기도 한다.


■ 열풍만으로 활주로 눈 증발…아스팔트 손상은 최소화 

SE-88은 체급에 따라 SE-88P(대형), SE-88F(소형)로 나뉜다. F-4 팬텀 엔진을 심장에 이식한 SE-88P는 길이 12.2m, 폭 3.36m의 거구다. 열풍만으로 활주로의 눈을 증발시키기 때문에 아스팔트의 손상을 최소화하면서도 완벽한 제설이 가능하다. 주로 활주로와 유도로 등에 투입되며 시간당 무려 축구장 90개 넓이(약 64만㎡)를 제설할 수 있다.

작은 거인 SE-88F(소형)에는 F-5 엔진이 장착됐다. 길이 9.5m, 폭 2.2m로 상대적으로 날렵해, 좁은 주기장이나 이글루(격납고) 사이를 누비며 눈을 치운다. 시간당 축구장 7개 넓이(약 5만㎡)의 제설 능력을 갖췄다.

강력한 SE-88의 그늘에 가려졌지만 스노플라우(Snow Plow)와 덤프트럭용 회전식 청소기도 공군 제설작전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40㎜ 이상의 폭설이 내리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SE-88이라도 제 성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래서 먼저 스노플라우가 투입돼 길을 트고, 그 뒤를 SE-88이 따르며 남은 눈을 치워버린다. 마지막으로 15cm 이하 잔설 처리에 특화된 덤프트럭용 회전식 청소기가 마무리하면서 완벽한 제설작전을 펼친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장비이기에 운용 수칙은 매우 엄격하다. SE-88은 엄연한 차량이자 공병장비로 분류된다. 아무나 운전대를 잡을 수 없다. 대형 트럭을 몰 수 있는 군 운전면허 1종 대형(SE-88P), 1종 보통(SE-88F)이 있어야 하고 별도의 장비 운용 교육도 이수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단 2명이면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과 도로교통법상 특수차량이기에 보험 가입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 안전 위한 10계명 존재

통제본부의 임무수행 대전제는 바로 ‘안전’이다. 공군비행단의 제설작전은 수십 톤의 대형 장비들이 굉음을 내며 움직이는 현장인 만큼 안전이 최우선이다. 과거 사용하던 TRS 무전기 대신 LTE 단말기를 도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LTE 단말기는 차량용 거치대, 외장형 스피커와 연결돼 극심한 소음 속에서도 명확한 의사소통을 보장한다.

통제본부 요원들에게는 피로 관리와 사고 예방을 위해 ‘제설작전 10계명’도 존재한다. 제1계명은 단연 ‘제설작전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는 원칙이다. 이 외에도 △강풍 시 바람을 등지고 운행 △SE-88 엔진 쿨링 타임(Cooling Time) 준수 △제설작업 예상 시 SE-88 사전 시운전 등이 포함됐다.

이 기사를 읽고 공군의 제설작전이 달라 보인다면 그건 착각이 아니다. 공군비행단의 겨울은 이처럼 뜨거운 엔진 열기와 차가운 이성과 원칙으로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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