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

입력 2025. 12. 02   15:09
업데이트 2025. 12. 02   15:15
0 댓글
이영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이영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새옹지마(塞翁之馬) 고사는 한고조 유방의 손자이자 회남왕이었던 유안이 편찬한 책 『회남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날 변방의 한 늙은이가 기르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 사람들이 걱정했는데, 얼마 후 그 말이 북방의 준마 한 마리를 짝으로 데리고 와서 사람들이 축하했다. 그런데 이 늙은이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낙마해 다리를 크게 다쳐 모두가 상심했다. 곧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지만 다리를 다친 그의 아들은 징집을 면해 죽지 않고 집안을 이어갈 수 있었다.

화가 복이 되고, 복이 다시 화가 됐다가 다시 복이 되니 길흉화복은 도무지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새옹지마는 보여준다. 그러면서 어떤 화도 결국 복으로 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고난을 잘 견디라는 교훈을 전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삶에는 새옹지마가 전하는 전화위복도 있지만 돌이키기 어려운 설상가상의 악순환도 적지 않다. 막연한 낙관으로 고난을 견뎌내라는 것이 마냥 탐탁할 수만은 없는 까닭이다.

삶의 지혜를 담은 경구들은 이처럼 자체 완성도에 문제가 있거나 다른 경구들과 상반된 내용을 담은 것이 적지 않다. ‘아는 것이 힘’인가 하면 ‘모르는 게 약’이기도 하고, ‘시작이 반’이라면서 ‘가다가 못 가면 아니 감만 못하다’고 한다. 작은 불행을 큰 불행의 방패로 삼으라는 ‘액땜’이 있는가 하면 재앙은 이어서 일어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화불단행’도 있고, ‘겹경사’라는 말로 연이은 경사를 축하하기도 하지만 ‘호사다마’라는 말로 불의의 화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기도 한다.

모순과 반전이 황당하기도 하지만 정말 사는 게 만만한 게 아님을 보여주고 있구나 싶다. 그러니 이 예측 불가의 모순 상황이 이어지는 인생 여정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성공과 실패, 행운과 불행, 복과 화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시 가다듬어야겠다. 새옹지마의 교훈도 당장의 길흉화복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그 의미를 새겨 이어질 화와 복에 대비하라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 사회의 이런저런 성공과 실패에 대한 개인이나 집단의 대응에는 그런 경계와 성찰의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 성공한 쪽은 실패한 쪽을 비난하고, 실패한 쪽은 성공한 쪽을 인정하지 않는 배척과 능멸의 기운이 넘친다. 성공의 양지에서 겸손이 더 큰 시너지를 키우고, 실패의 그늘에서 반성과 성찰이 재기의 의지를 만들어 내는 성찰의 큰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오만과 무례의 황폐한 소모전만 거듭하고 있는 모양새다.

성공과 실패는 모두 양날의 칼을 품고 있다. 어느 쪽이든 잘 수용하면 다음 단계의 도약을 위한 유용한 발판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덫이 될 수 있다. 새옹이 연이어 맞이한 화와 복의 반전은 그가 보인 대범한 수용의 운명적 결과다. 성공의 복을 최후의 순간까지 이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늘 경계와 겸손의 마음으로 후과를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회남자』의 편찬자 유안도 황가의 일원으로 살며 문학적 재능을 발휘해 뛰어난 업적을 내놓는 등 줄곧 양지에 살았지만 말년에 엉뚱한 역모에 연루돼 불운하게 자살하고 말았다고 하니 그 역시 새옹지마식 인생 역정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한무제가 그를 모함한 무리를 처단해 주었다지만 길흉화복의 윤회를 넘긴 뒤의 일이다.

12월이다. 올 한 해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을 새기며 다음 단계의 새로운 출발을 예비하는 시간이다. 새옹지마의 교훈을 새기며 성공에 겸손하고, 실패에 대범한 큰 성찰의 시간이 되면 좋겠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