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까지 날아온 드론…‘클레이 사격’ 하듯 탕!

입력 2025. 12. 02   15:56
업데이트 2025. 12. 02   16:05
0 댓글

드론과 AI, 전장의 공식이 바뀐다
산탄총이 첨단 미사일보다 드론 잡기에 유리한 놀라운 이유

비용 대비 압도적 효과…실전서 입증
프랑스군, 2년 전부터 정식 훈련 포함
미 해병대, 구형 ‘레밍턴 870’ 재소환
우크라군 참호엔 총 든 ‘드론 사냥꾼’
현대 대공포·미사일에 ‘확산 탄환’ 적용
국산 ‘천공’ 표적 근접 폭발해 파편 뿌려

우크라이나군이 산탄총으로 드론을 격추하는 장면. 우크라이나군 공개 영상 캡처
우크라이나군이 산탄총으로 드론을 격추하는 장면. 우크라이나군 공개 영상 캡처



2024년 여름 우크라이나 헤르손 전선. 한 병사가 어깨에 산탄총을 메고 하늘을 주시한다. 저 멀리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러시아의 FPV(1인칭 시점) 드론이 시속 100㎞로 돌진해온다. 병사는 침착하게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탕!’ 한 발의 총성과 함께 드론이 산산조각 나며 땅에 떨어졌다. 이 장면은 21세기 전장의 가장 큰 아이러니다. 수억 원짜리 첨단 방공 시스템이 놓친 표적을 몇십만 원짜리 재래식 산탄총이 간단히 해결한 것이다.

하지만 오해는 말자. 산탄총이 만능 해결책은 아니다. 유효 사거리가 50m 내외에 불과해 사실상 ‘최후의 방어선’ 역할만 한다. 드론이 이미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생존을 위한 마지막 수단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탄총이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비용 대비 효과가 압도적이고 복잡한 장비 없이 즉시 사용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실전에서 효과가 입증됐기 때문이다.


확률론이 만든 완벽한 무기

산탄총의 비밀은 확률론에 있다. 일반 소총 탄환은 한 점을 정확히 맞혀야 한다. 시속 100㎞로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작은 드론을 정확히 조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산탄은 다르다. 방아쇠를 당기면 여러 개의 작은 탄환이 넓게 퍼진다. 마치 모기를 손으로 잡는 것보다 파리채를 사용하는 게 쉬운 것과 같은 원리다.

구체적인 수치를 보자. 12게이지 산탄총에서 발사되는 버크샷(buckshot) 탄환은 보통 8~9개의 구형 탄환(지름 약 8.4㎜)을 포함한다. 총구를 떠난 탄환들은 거리에 따라 점점 퍼진다. 50m 거리에서 확산 범위는 직경 약 2m에 달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표적에는 정밀도보다 확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실전이 증명했다.

산탄총은 특히 전자기 재밍이나 GPS 스푸핑 같은 첨단 대응장비가 없는 최전선 보병들에게는 현실적인 자구책이다. 드론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복잡한 장비 조작 없이 즉시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산탄총의 가장 큰 장점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 병사들 모두 산탄총을 애용하는 이유다.

 

레밍턴 870 산탄총. 출처=레밍턴 암즈 공식 홈페이지
레밍턴 870 산탄총. 출처=레밍턴 암즈 공식 홈페이지



나토가 주목한 19세기 무기

이 교훈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전체로 빠르게 확산됐다. 프랑스군은 2023년부터 드론 대응 산탄총 훈련을 정식 교과목에 포함시켰다. 이탈리아와 벨기에도 뒤따랐다. 미 해병대는 “사랑하는 레밍턴 870을 드디어 전투에서 제대로 쓸 수 있게 됐다”며 환영했다. 레밍턴 870은 1951년부터 생산된 펌프액션 산탄총으로 미군이 수십 년간 사용하며 검증된 무기다.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도 발견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폭격기의 공중 사수(air gunner)들이 반사신경 훈련을 위해 산탄총을 사용했다는 기록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적기를 기관총으로 격추하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 지상에서 산탄총으로 클레이 사격(clay pigeon shooting) 훈련을 받았다. 80년 전 기술이 21세기에 다시 유효해진 셈이다. 역사가 현재를 증명하는 흥미로운 사례다.


현대 방공의 핵심 원리로

‘확산 탄환’ 개념은 현대 대공포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우리 군의 비호 자주대공포와 독일의 게파드(Gepard) 대공포가 사용하는 ‘전방확산탄(AHEAD·Advanced Hit Efficiency And Destruction)’ 기술이 대표적이다. 이는 산탄총 원리를 대형화한 것이다.

AHEAD 탄약은 표적 앞 수십 미터 지점에서 정확하게 폭발하도록 프로그래밍된다. 포탄 하나가 터지면 152개 또는 그 이상의 텅스텐 파편이 원뿔 모양으로 퍼진다. 이 파편 구름 속을 드론이나 미사일이 통과하면 여러 발의 파편에 동시에 맞게 된다. 마치 거대한 산탄총을 쏘는 것과 같다. 이 기술로 크루즈 미사일이나 대규모 군집 드론도 효과적으로 요격할 수 있다.

독일 라인메탈(Rheinmetall)이 개발한 35㎜ AHEAD 탄약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효과를 입증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운용하는 게파드 대공포는 AHEAD 탄약으로 러시아의 샤헤드 드론을 다수 격추했다. 독일 국방부는 “게파드 1대가 평균적으로 매일 1~2대의 드론을 격추한다”고 발표했다. 산탄총에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현대 방공체계의 핵심 원리로 자리 잡은 것이다.

 

우리 군이 운용하고 있는 천궁2 중거리지대공미사일의 사격 모습. 김병문 기자
우리 군이 운용하고 있는 천궁2 중거리지대공미사일의 사격 모습. 김병문 기자



천궁, 같은 원리 다른 스케일

우리의 중거리지대공미사일 ‘천궁’ 시스템도 유사한 개념을 사용한다. 천궁의 요격 미사일은 표적에 직접 명중하는 대신 근접신관(proximity fuse)을 사용해 표적 근처에서 폭발한다. 폭발 시 수백 개의 파편이 사방으로 퍼지며 이 파편 구름이 표적을 파괴한다. 드론처럼 작고 기동성 높은 표적에는 직접 명중보다 근접 폭발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ADD는 이 원리를 더욱 발전시켜 ‘다탄두 요격 미사일’ 개념을 연구 중이다. 미사일 하나가 여러 개의 작은 요격체를 방출해 군집 드론을 동시에 공격하는 방식이다. 마치 공중에서 산탄을 뿌리는 것과 같다. 이 기술이 완성되면 저비용 드론 떼를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후의 방어선, 하지만 필수 불가결

하지만 산탄총의 한계도 분명하다. 유효 사거리가 50m 내외라는 것은 드론이 이미 매우 가까이 접근했다는 의미다. FPV 드론의 경우 시속 100㎞ 이상으로 돌진하기 때문에 50m는 불과 1.8초 거리다. 병사는 드론을 발견, 조준, 발사하는 모든 과정을 2초 이내에 완료해야 한다. 엄청난 반사신경과 침착함이 필요하다.

날씨의 영향도 크다. 강한 바람이 불면 산탄의 확산 패턴이 불규칙해진다. 비가 오면 사거리가 줄어든다. 야간에는 드론을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산탄총은 ‘마지막 방어선’일 뿐, 주된 대응수단이 될 수는 없다. 레이다, 전자기 교란, 요격 미사일 등 다양한 방어 수단을 갖추고, 그 모든 것이 실패했을 때 최후의 보루로 산탄총을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전략이다.

우크라이나군이 실제로 이렇게 운용한다. 전선의 각 소대마다 최소 2명의 병사에게 산탄총을 지급하고, ‘드론 사냥꾼(drone hunter)’이라는 별도의 역할을 부여했다. 이들의 주 임무는 드론 경계와 격추다. 영국의 군사 전문지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Jane’s Defence Weekly)’는 산탄총을 든 병사들이 우크라이나 참호의 새로운 풍경이 됐다고 보도했다.


단순함이 주는 강력한 생존력

산탄총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때로는 가장 단순한 해법이 가장 현명한 해법이다. 첨단기술이 만능은 아니다. 복잡한 시스템은 고장 날 수 있고 전자장비는 재밍당할 수 있으며 미사일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산탄총은 항상 작동한다. 전기도 필요 없고, 위성 신호도 필요 없다. 그저 탄환과 병사의 반사신경만 있으면 된다.

우리 군도 이 교훈을 받아들이고 있다. 국방부는 2023년부터 일반전초(GOP) 병력에 산탄총 사용 교육을 하기 시작했다. 북한 드론이 침투할 경우를 대비한 현실적 대응책이다. 방산기업들은 드론 대응용 특수 산탄탄을 개발 중이다. 일반 사냥용 탄환보다 파편 수를 늘리고, 확산 패턴을 최적화한 제품이다.

프랑스의 한 방산기업은 ‘드론 킬러(Drone Killer)’란 전용 산탄탄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탄피 안에 미세한 철망이 들어있어 발사되면 그물처럼 펼쳐지며 드론을 감싼다. 이탈리아 업체는 전자기 펄스(EMP)를 방출하는 특수 탄환을 개발했다. 드론 근처에서 폭발하면 강한 전자기파가 발생해 드론의 전자회로를 마비시킨다. 19세기 무기인 산탄총이 21세기 기술과 결합해 진화하고 있다.

드론 시대의 역설은 이것이다. 가장 첨단 기술의 위협을 막는 것은 가장 오래된 무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오래된 무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새로운 전술과 훈련이 필요하다. 산탄총은 만능이 아니지만 다층 방어 체계의 필수 요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방아쇠를 당기는 병사의 침착함과 용기다. 기술은 도구일 뿐 전쟁을 이기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필자 김형석 한성대학교 국방과학대학원 국방전력학과 교수는 한국대드론산업협회 드론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하늘의 창과 방패, 드론전쟁의 최전선』이 있다.
필자 김형석 한성대학교 국방과학대학원 국방전력학과 교수는 한국대드론산업협회 드론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하늘의 창과 방패, 드론전쟁의 최전선』이 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