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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군에 가야 한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방의 의무를 진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39조에 따른 것이다. 필자 역시 헌법에 따라 입대했고,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잠시 그 시절 얘기를 해보려 한다. 1999년 12월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입영통지서를 받고 2000년 밀레니엄을 군대 밖에서 맞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하지만 입영을 미루면 또 언제 통지서가 나올지 몰라 그대로 입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군에 첫발을 디딘 곳은 육군훈련소. 한쪽에서 슬퍼하는 어머니와 아들 입대를 뿌듯해하는 아버지의 상반된 표정을 뒤로 하고 훈련소에 입영했다.
훈련소 생활을 돌이켜보면 고역 그 자체였다. 날씨는 왜 그리 추운지 지금 생각해도 몸이 절로 떨린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배고픔이었다. 훈련병들이 식사하는데 주어지는 시간은 5분 남짓. 식사 시작과 함께 밥을 한창 먹고 있으면 “식사 끝”이라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배고픈 훈련병들은 잔반 처리를 위해 식판을 들고 가면서 밥을 먹다 얼차려를 받기도 했다.
사람은 진화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몇 번 그렇게 식사를 하다 보니 꾀가 생겼다. 가장 빠르게 밥을 먹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우선 “식사 시작”이라는 말이 떨어지면 밥을 재빠르게 국에 만다. 국밥이 되니 먹는 속도는 자연스레 빨라진다. 매일같이 그렇게 허기진 배를 채웠으니 어찌 훈련소 기억이 유쾌할 수 있으랴. 오죽했으면 수양록에 ‘훈련소에서 밥 먹는 시간만 충분히 줬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썼을까.
자대 얘기를 해보자. 훈련소에서 106㎜ 무반동총 주특기 교육을 마치고 간 곳은 육군101여단이었다. 소대에 배치받고 내무반에 들어가자 선임병이 쪽지를 던져준다. 거기에는 소대가, 중대가, 여단가와 내무반 서열이 적혀 있었다. 시간은 하루뿐 다음 날까지 외우란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당연히 외우지 못했고, 이후 벌어진 일은 상상에 맡긴다.
힘든 시기에도 국방부 시계는 계속해서 돌아갔다. 일병, 상병이 되니 고되기만 했던 군 생활에 나름 행복한 추억도 생겼다. 그 시절 병장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말 그대로 내무반의 왕이었다. 당시 표현으로 ‘퍼진다’고 했는데, 모든 이등병은 병장이 되기만을 바라며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자 역시 병장을 단 뒤 호사를 누렸다. 그렇게 2년2개월, 26개월이라는 세월이 흘러 전역하게 됐다. 제대 후 다시는 그곳을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그 뒤로 여러 차례 찾아갔다. 복무할 때는 마냥 힘들다고만 여겼는데 돌이켜보니 추억도 많이 쌓였던 것이다.
최근 군 고위직과 만나 얘기를 나누다 ‘요즘 군대는 참 편한 거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필자 입장에서는 그 시절 없던 휴대전화도 쓰고 복무기간도 짧아졌으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근무하는 장교들은 병사들이 입대 자체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아무리 군대가 좋아졌다 하더라도 통제된 생활을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편해졌다’는 것은 필자 기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힘든 군 시절 자주 떠올렸던 구절이다. 우리 장병들 또한 주어진 임무를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국방부 시계는 그대들에게 전역이라는 선물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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