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0일 벨기에 브뤼셀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앞. 차가운 햇살이 비석을 비추고 백발의 참전용사들이 천천히 자리를 잡았다. 움직임은 느렸지만, 표정에는 긍지와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이분들을 직접 뵐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이 행사는 6·25전쟁 발발 75주년을 맞아 벨기에 한국전참전협회가 주관했다.
1950년부터 1955년까지 3498명의 벨기에 젊은이가 유엔군으로서 한국을 향했다. 주로 미 3사단 예하 영국 연방 29여단에 배속돼 임진강, 학당리, 잣골지구전투 등에서 중공군을 상대로 전공을 세워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았다. 이들 중 106명은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336명이 부상했다. 그 희생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서 있다.
류정현 주벨기에 대사는 “한국전은 ‘잊힌 전쟁’으로 불리지만, 한국민에게 결코 잊힌 적이 없다”고 말했다. 벨기에 한국전참전협회장은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며 생존한 참전용사들 한 분 한 분 여전히 애정을 갖고 한국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저렸다. 헌화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 고개를 숙이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입은 군복의 무게에는 이분들의 삶이 깃들어 있구나.” 그때 느낀 것은 감사와 절박함이었다. 한국에서 근무할 때의 감사는 배운 감정이었지만, 이곳에서 마주한 참전용사들의 모습은 배움이 아닌 현실의 울림이었다. 행사 후 몇몇 용사가 조용히 다가와 내 손을 잡고 미소를 지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표정이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줬다. 그들의 눈빛에는 지난 세월의 고통보다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말 대신 고개를 숙였다. 침묵이 오히려 어떤 말보다 깊었다. 그날 이후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분들에게 충분히 감사했는가?” 기념식이나 헌화만으로는 이 희생을 다 담을 수 없다. 이제는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그분들의 이름을 불러 드리며 대한민국이 여전히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 6·25전쟁 참전국 중 3개국을 담당하는 국방무관으로서 우리를 위해 피 흘린 분들을 직접 뵐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이 다가왔다.
“Freedom is not free.” 짧은 문장이지만 그 속에 한 세대의 피와 시간, 이름이 들어 있다. 그날의 헌화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었다. 내가 서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다시 느끼게 한순간이었다.
그 무게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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