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스타를 만나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연준 솔로앨범 ‘노 라벨스: 파트 01’
퍼포먼스 아이콘 화려한 라인업 … 어나더 레벨
라벨 떼니 완벽한 설계 빅히트 보였다 … 어나더 라벨
‘전설의 연습생’ 넘치는 달란트 담아낸 앨범
줄리아 루이스 등 거물급 해외 뮤지션 참여
해방감 가득…‘노 라벨’ 향한 여정 담았지만
빅히트 역량 총동원…인간적 따뜻함 아쉬워
모든 포장을 떼어 낸 자리에는 맨살만이 남는다. 고전적인 비례미를 갖춘 앨범 표지 속 상의를 탈의한 아티스트의 육체는 기하학적 형태에 맞춰 완벽한 균형미를 향해 요동치고 있다. 재능과 노력으로 다듬어진 이 아름다운 피사체에 가타부타 수식은 필요치 않아 보인다. 보이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멤버 연준이 발표한 첫 솔로앨범 ‘노 라벨스: 파트 01(No Lables: Part 01)’이다.
연준의 솔로 데뷔는 필요가 아니라 필연의 결과물이다. 2019년 데뷔 이후 탄탄한 서사와 매력적인 무대를 선보이며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던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활동 중에도 가장 먼저 솔로로 데뷔할 멤버를 물으면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이름은 언제나 연준이었다. ‘4세대 잇보이’ ‘빅히트 전설의 연습생’이라는 극찬은 연준이 원해 얻은 호칭이 아니라 연준을 지켜본 이들의 자연스러운 탄성이었다. 노래, 랩, 춤 모두 가능한 올라운더이자 특출난 콘셉트 소화력, 이를 가능케 하는 세련된 외모와 피지컬까지. 두터운 세계관으로 무장한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독특한 음악세계가 무대에서 펼쳐지는 순간의 중심에는 언제나 퍼포먼스 아이콘 연준이 있었다. 지난해 9월 키치한 설정에 애크러배틱한 퍼포먼스로 데뷔한 솔로곡 ‘껌(GGUM)’이 상상을 현실로 가져온 순간부터 연준의 솔로활동 기대감은 점차 커졌다. 항간에선 이 넘치는 달란트를 담을 그릇을 최고급으로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노 라벨스’는 과연 그 기다림이 허상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려 한다. 아무런 상표 없이 오직 연준만을 담기 위해, 앨범 제목과는 역설적으로 그의 레이블 빅히트뮤직은 최고의 스페셜 코스를 준비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앤팀의 전담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슬로우래빗과 방시혁 의장, 자신의 음악에 참여한 연준을 주축으로 전 세계 각지에서 수급한 수준급의 노래를 아낌없이 담았다. 타이틀곡 ‘토크 투 유(Talk To You)’에 이름을 올린 줄리아 루이스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음악가이자 라틴음악의 아이콘인 배드 버니와 함께 작업하고 카롤 지, 페소 플루마 등 라틴팝을 넘어 힙합까지 섭렵하는 거물이다. 마지막 곡 ‘코마(Coma)’에는 제6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R&B 송으로 이름을 올린 솔로음악가 카린 로맥스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앨범은 슈퍼 프로듀서 퍼렐 윌리엄스의 작법이 많이 떠오르는 가운데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같은 오늘날 힙합의 대안적 스타들과 록의 문법을 받아들여 더욱 과격한 형태로 나아가고자 하는 파리, 텍사스 등 신예들의 트렌드를 수용하고 있다.
이 근사한 모델하우스 내부는 어떻게 꾸며져 있을까. 앨범을 관통하는 뮤직비디오와 수록곡을 들여다보면 ‘라벨을 벗는다’는 서사가 꽤나 구체적으로 설계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일 곡을 넘어 앨범 전체에 서사를 부여하는 콘셉트 뮤직비디오는 마치 하나의 옴니버스처럼 ‘혼돈-확장-해방’이라는 3단 구조를 따른다.
서사의 시작은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코마’다. 어두운 흑백 조명 속 연준은 군중 사이에서 서성이며 ‘라벨에 갇힌 자아’의 내면적 혼란을 시각화한다. ‘껌’을 연상케 하는 무거운 베이스 리프 위 리듬감 있는 퍼커션 연주와 불길한 보컬 샘플을 더하며 오직 무대를 바라보는 이 곡은 고뇌를 드러내는 여백으로 기능한다. 혼돈은 ‘렛 미 텔 유(Let Me Tell You)’에서 넓어진다. 하이브 아메리카의 신인그룹 캣츠아이의 멤버 다니엘라와의 합동 퍼포먼스로 갇힌 자아는 협업이란 형태로 다른 세계와 접속한다. 오로지 무대에 몰입하는 음악가가 자아에게 말을 건네며 자신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서사의 정점은 뮤직비디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타이틀곡 ‘토크 투 유’다. 록스타의 반항적 카리스마를 장착하고 하드록 기반의 강렬한 사운드와 함께 달려 나가는 음악가의 패기를 막을 수 없다. 길거리에서의 설교를 마친 뒤 자신을 따르는 크루와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연준은 붉은 퍼 코트 아래 맨살을 드러내며 수많은 군중 앞에서 거리를 행진하며 와이어를 타고 날아다닌다. 힙합 음악가 제이펙마피아의 ‘신 미에도(Sin Miedo)’의 뮤직비디오 구도가 연상되는 영상과 함께 귀를 찢을 듯이 폭발하는 선명한 해상도의 음악은 완전한 해방의 상징이다. 타인의 인식에 맞서 원하는 내 모습으로 모두를 미치게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가 선명하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지 않는 노래 역시 ‘라벨 없음’이라는 태도를 각자 방식으로 변주한다. ‘두 잇(Do It)’은 절제된 힙합 비트 위 실행에서 오는 완전한 자유를 외치고 ‘나신 바웃 미(Nothin’ ‘Bout Me)’는 한 발 더 나아가 ‘다른 이가 말하는 나’가 아닌 누구도 정의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내가 말하는 나’를 선언한다. 심지어 가장 서정적인 트랙 ‘포에버(Forever)’조차 스스로 정의한 나의 지속성을 약속하고 있다.
앨범은 ‘혼돈’에서 ‘해방’까지 ‘라벨 없음’을 향한 여정을 촘촘하게 직조한다. 그런데 바로 이 ‘완벽한 설계’가 ‘노 라벨스’라는 제목을 가장 강력하게 배반하는 역설을 낳는다. 앨범이 잘 지어진 모델하우스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노래, 영상, 퍼포먼스가 갖는 개별 방의 매력이 강력하지만, 최연준이라는 주인은 어색한 입주자처럼 느껴진다. 자유로움과 솔직함을 강조하는 앨범은 퍼포먼스 면에서만 기능하며 연준의 내면을 담아내지는 못한다. 앨범을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코드는 수식 없는 연준이 아닌 빅히트 레이블이다. ‘노 라벨’이라는 제목과 반대로 ‘예스 레이블’인 셈이다. 연준은 할리우드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앨범을 통해 자신을 더 잘 알게 됐다는 소회를 털어놨다. 엄밀하고 완벽한 구조물과 같은 앨범 커버 속 육체에선 인간의 체온보다 기계적인 완성도가 먼저 느껴진다. 피와 살을 채워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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