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 시대 미국·중남미 관계 동향-① 미국의 지역전략에 투영된 권위주의적 편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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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집권 1기 시기 ‘강력한 지도자(Strongman)’로서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키고자 했다. 이는 집권 2기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미국의 중남미 국가 접근법은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투영함으로써 서반구 지정학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명확히 보여 주는 사례다.
이는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확인된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은 중남미 국가들을 대상으로 외교 관계의 기본 절차를 무시하는 일방주의적 행보를 보여 주기 시작했다.
둘째, 권위주의 정치가 만연했던 역사적 배경 속에서 부상한 이 지역의 강력한 지도자들에게 동조하는 모습이다. 군벌주의(Caudillismo)로 명명되는 중남미 지역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힘 있는 지도자가 법적 절차나 입법적 규제를 무시하면서 절대적 권력을 행사해 온 이 지역의 특징적 정치현상이다. 이는 식민지 시대 유산으로 군벌정치 및 대중영합주의(populism)와도 밀접히 연계되는 특징을 보여 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정치 방식에 갈망을 드러내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러시아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대표적인 권위주의 지도자들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취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자신과 비슷한 스타일의 중남미 국가 지도자들을 지지해 왔다.
그 명백한 사례는 트럼프 집권 2기 초반에 나타났다. 강력한 지도력과 신속한 사법체계를 결합하면서 엄격히 통치해 온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다. 부켈레 대통령은 폭력적인 갱단 조직원들을 수용하는 동시에 정치적 비판자들을 위협하고 억압하려는 목적으로 방대한 감옥 인프라를 구축했다. 그는 미국에서 이송된 제3국 추방자들을 자국 감옥에 수용하는 조건으로 수수료를 지불받기로 동의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정책에 호응했다. 이에 미국은 지난 8월 공개된 미 국무부의 ‘2024년 연례 인권보고서’ 초안에서 엘살바도르와 관련해 “신뢰할 만한 심각한 인권침해 보고는 없었다”고 기술했다. 이는 “정부 주도의 살해와 고문 사례를 비롯해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열악한 교도소 환경 등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가 존재한다”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기 평가에서 대폭 수정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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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선호하는 중남미의 다른 지도자들도 대부분 권위주의적 성향이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2023년 12월 취임 이후 극우 경제정책을 시행하면서 국가의 페론주의(Peronism) 역사를 상기시키는 대중영합주의 방식으로 통치해 왔다.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자주 언급했으며 트럼프 대통령 역시 밀레이를 칭찬으로 화답했다. 이런 관계에 따라 트럼프는 당선인 시절인 2024년 11월 행사에 말레이를 초대했다. 이 행사 연설 때 “아르헨티나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당신이 한 일을 축하하며, 당신이 여기에 있다는 게 영광”이라면서 그를 추켜세웠다.
트럼프는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에게 패배한 2020년 11월의 대선 결과를 부정했다. 밀레이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아르헨티나 정치진영에서는 트럼프가 자국에서의 선거 부정을 지지할 가능성에 우려를 제기했다. 이러한 우려는 브라질에서도 나왔다. 트럼프가 2022년 10월의 브라질 대선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에게 패배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측의 우호적 관계는 보우소나루 당시 대통령이 트럼프 집권 1기 시기인 2019년 3월 백악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브라질의 트럼프’로 극찬하면서 확인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우소나루를 향한 개인적 지지를 넘어 브라질 정부를 압박했다. 이러한 행보는 브라질 검찰이 202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대통령직을 유지하기 위해 쿠데타를 시도했다는 혐의로 보우소나루를 기소하면서 비롯됐다. 특히 지난 9월 브라질 연방대법원이 보우소나루에게 27년 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하자 트럼프는 이를 마녀사냥으로 규정하면서 브라질에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해당 연방대법관과 그 아내에게 제재도 가했다. 보우소나루의 처벌을 면하게 하려는 내정간섭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이에 룰라 대통령은 9월 14일 자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브라질의 자유와 주권을 보호하려는 결단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저는 브라질 대법원이 목요일에 내린 역사적인 판결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의 기관과 민주적 법치주의를 보호하는 결정이었습니다. 이것은 ‘마녀사냥’이 아니었습니다. 이 판결은 브라질의 1988년 헌법에 따른 절차에 의해 내려진 결과였으며, 이는 군사 독재에 맞서 싸운 20년의 투쟁 후 제정된 것입니다. 몇 달의 조사 끝에 저를 암살하려는 계획과 부통령, 대법원 판사를 암살하려는 계획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2022년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려는 내용의 초안도 발견됐습니다.”
중남미 지역의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애착은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전통적 접근법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냉전기 미국은 중남미 지역 독재정권들을 정치적으로 은밀하게 지원했다. 심지어 폭력적인 쿠데타의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미국의 개입은 이 지역의 정치적 역사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아이티, 도미니카공화국, 과테말라, 칠레 같은 다양한 지역에서의 독재정권은 미국의 냉전시대 지원이 없었다면 아마 출범하지 않았을 것이며, 출범 이후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기도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동시에 냉전기 미국은 적어도 수사적 차원에선 중남미 지역에서의 민주화를 지지하면서 지역 내 인권을 옹호했다. 하지만 트럼프 2.0 시대의 미국은 이와 대조적이다. 미 국무부의 연례 인권보고서에서 이 지역의 인권 문제 관련 내용이 대폭 축소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는 이 지역의 미국 접근법에서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사실상 실종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대신 미국의 정책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개인화된 방식에 따라 추진되는 모습이다. 그 결과 트럼프의 이 지역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의 선호도가 더욱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중남미 지역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에서 반복되는 주제는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 대한 집착이다. 미국의 후방으로 여겨지는 이 지역에서 중국이 더 많은 지배권을 확립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 열강이 미주 대륙에 새로운 식민지 건설이나 정치 간섭을 하지 말라는 원칙을 담은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을 연상시키는 논리다. 하지만 민주주의에 관한 고민을 상실한 채 권위주의적 편향성을 보여 주는 미국의 현 지역전략으로는 중국과의 경쟁에 대응하기가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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