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에서 준비되는 승리

입력 2025. 09. 15   15:21
업데이트 2025. 09. 15   15:21
0 댓글
김건희 소령 공군사관학교 항공체육 교수
김건희 소령 공군사관학교 항공체육 교수

 


“워털루전투의 승리는 이미 이튼스쿨 운동장에서 준비된 것이었다.”

1815년 워털루전투에서 당시 유럽을 제패하던 나폴레옹을 꺾고 승리를 거둔 뒤 웰링턴 장군이 남긴 말이다. 그는 전장 승패가 병력이나 무기의 차이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길러낸 끈기와 협동심, 그리고 도전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강조했다.

국방이라는 중책을 맡는 군 장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단순히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전략을 세우는 지혜, 무기체계를 다루는 전문성, 국제정세를 읽어내는 안목, 부대를 지휘·통솔하는 능력, 정확하고 빠른 판단력까지 두루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장차 우리 군의 중추가 될 사관생도들은 전공 및 교양 학문, 군사학, 외국어, 리더십 등 다양한 교육과 훈련을 받고 있다. 체육교육 또한 군인으로서의 강인한 체력을 함양한다는 점에서 필수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체육교육은 다소 체력 향상이라는 측면에서만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체육교육의 본래 가치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체육교육은 단순히 기록을 높이고 체력을 증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체육교육활동을 통해 사관생도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단련하고, 동료와 협력하며, 순간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험을 쌓는다. 이는 곧 전장에서 지휘관이 마주할 실제 상황과 맞닿아 있다.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거나 체력적으로 지친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끈기는 위기 속에서도 임무를 완수하게 하는 정신적 강인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팀 안에서 각자 역할을 다하며 호흡을 맞추는 과정은 집단 속에서 리더십과 팔로워십을 동시에 배우는 기회가 된다.

또한 경기 중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전략을 수정하는 경험은 전장에서 요구되는 상황판단력의 토대가 된다. 무엇보다 동료들과 함께 흘린 땀과 성취의 기쁨은 강한 전우애를 만들고, 훗날 부대를 하나로 묶는 힘이 된다. 이처럼 체육교육은 신체를 넘어 정신·사회적 자질을 종합적으로 길러주는 장이자 장차 지휘관으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적 교육과정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튼 스쿨’의 사례는 깊은 교훈을 준다. 이 학교는 영국 역사상 수많은 정치가와 군 지휘관을 배출한 대표 명문 학교로, 학문적 성취 못지않게 체육교육을 핵심으로 삼아온 전통을 지니고 있다. 학생들은 매일같이 운동장에서 축구, 크리켓, 조정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며 강인한 체력을 기르는 동시에 집단 속에서 협동심과 리더십을 배우고, 도전정신과 끈기를 길렀다. 웰링턴 장군의 말은 단순히 학교 명성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운동장에서 배운 체육교육의 가치가 실제 전장의 승패를 좌우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튼 스쿨’의 전통은 영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와 국적을 초월해 체육교육은 장차 리더가 될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을 길러주는 교육의 장이다. 다시 말해 역사 속 이튼의 운동장이 그랬듯, 지금의 사관학교 운동장 또한 미래의 전장을 준비하는 가장 실제적인 교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체육교육은 결코 선택적 활동이 아니라 사관생도가 장차 지휘관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과정이다. 웰링턴 장군의 말처럼 우리의 승리는 이미 지금 운동장과 체육관에서 흘리는 땀 속에서 준비되고 있다. 우리는 운동장에서의 작은 승부와 도전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이 곧 조국을 지켜낼 큰 승리를 만드는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