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당시 군사 장비, 그늘막 아래 방치되다시피 진열

입력 2023. 03. 22   15:25
업데이트 2023. 03. 2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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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전사적지를 찾아서(Ⅱ) - 라오스 3

수도 비엔티안 위치한 군사박물관
미그기·MI 계열 헬기 등 야외 전시
자료실엔 공산혁명 사진 걸려 있어

메콩강 중심으로 태국과 국경선 확정
중국 대형 댐 건설로 강 주변국 몸살
‘물 무기화’로 하류 국가들 압박 수단

라오스 공산 해방군과 북베트남군의 연합작전 모습.
라오스 공산 해방군과 북베트남군의 연합작전 모습.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는 여러 개의 한인 식당이 있다. 코로나 여파로 많은 한국인 경영자가 귀국했다가, 최근 다시 되돌아오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도 호황을 누린다는 한인 식당을 찾아갔다. 현지에서 장기간 거주한 사장으로부터 생생한 라오스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는 비엔티안에서 10여 년간 식당을 운영했고, 대부분의 손님은 한국 여행객이 아닌 현지인이라고 귀띔했다. 내부 시설은 깔끔했고, 음식값도 상상외로 저렴하다. 하지만, 사업에 집중하느라 그는 라오스 역사·정치·문화에 관해서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 비엔티안 외곽의 메콩강이 라오스·태국의 국경선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현지 국가에 대한 약간의 인문학적 소양만 갖춰도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았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메콩강에 얽힌 주변국의 국익 다툼


툭툭이(삼륜차) 운전기사와 함께 시내 변두리의 메콩강변으로 나갔다. 강폭은 의외로 넓어, 건너편이 아득하게 보인다. 총길이는 4800㎞로 세계에서 열두 번째다. 티베트에서 발원한 이 강은 중국,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인도차이나해로 빠져나간다. 강 주변 면적은 79만5000㎢로 한국 넓이의 8배다.

풍부한 수량과 비옥한 토지로 라오스 최대의 농경지가 이 유역에 퍼져있다. 1300여 종의 물고기와 수많은 동식물이 서식하는 이곳은 아마존강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큰 생태계를 가졌다. 이 유역은 역사적으로 라오족이 살아온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라오스·태국 간의 분쟁을 거치면서 이 강을 중심으로 국경선이 확정됐다. 최근 메콩강은 중국의 댐 건설로 라오스를 포함한 주변국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1990년 중국은 상류에 처음 대형 댐을 지은 후, 현재 11개의 댐을 가동 중이다. 하류의 어업·농업은 중국 댐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 중국은 인접 10여 개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여러 강물의 발원지다. ‘물의 무기화’로 중국은 하류 국가들을 언제든지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갖게 됐다.


라오스 군사박물관과 미국의 비밀전쟁

라오스 군사박물관의 야외 전시 장비 전경.
라오스 군사박물관의 야외 전시 장비 전경.

 

1976년에 개관한 비엔티안 군사박물관에는 라오스 내전 당시의 군사 장비들이 진열돼 있었다. 대형건물의 전시관은 보수공사 중이었는데, 현역 군인들이 박물관을 관리한다. 병영 같은 분위기에 정문 근무자에게 출입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의외로 친절한 병사는 자료실을 알려주며, 전시 장비의 사진 촬영도 가능하단다. 구소련제 미그(Mig) 전투기, MI 계열 헬기와 수송기가 방치되다시피 그늘막 아래 있다. 사무실을 겸한 자료실에는 1950년대부터 1975년 공산혁명 단계까지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라오스 인민해방군은 1949년 1월 20일 북부 후아판주에서 최초로 창설됐다. 당시 인원은 수십 명에 불과했는데, 초대 사령관이 훗날 라오스 제2대 대통령이 된 카이손(Kaysone)이다. 점차 규모를 확대한 인민해방군은 1954년 5월, 디엔비엔푸 프랑스 요새를 격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뒤이어 베트남전쟁이 발발하자, 라오스 동부지역 대부분을 호찌민 통로가 관통했다. 60만 명의 북베트남군, 100톤의 보급품과 트럭·탱크가 이 길을 따라 전선에 투입됐다. 통로 방어 병력은 2만5000명에 달했고, 지하터널·연료창고가 건설됐다.

미군은 엄청난 양의 폭탄을 퍼부었지만, 보급로는 며칠이면 복구됐다. 심지어 미군은 캔맥주를 투하해 군인들이 이를 마시고 취하도록 해보기도 하고, 접시닦이 세제를 뿌려 길을 미끄럽게도 만들었다. 그러나 폭격과 방해 공작에 영향을 받은 것은 이송 물자와 인원의 20%에 불과했다.


경찰박물관에서 본 마약범 소탕작전

라오스 경찰박물관 청사와 야외 전시 장비 전경.
라오스 경찰박물관 청사와 야외 전시 장비 전경.

 

라오스 경찰의 마약범죄 근절 홍보 간판.
라오스 경찰의 마약범죄 근절 홍보 간판.

 
비엔티안 독립문에서 멀지 않은 곳의 웅장한 건물이 경찰박물관이다. 야외 전시 장비에는 소방차까지 진열돼 있고, 울타리에는 마약 근절을 위한 홍보 간판이 있다.

전시관에 들어서니, 견장에 작은 별 3개를 부착한 직원이 반갑게 맞이한다. 라오스 경찰의 계급 표식은 색상만 다를 뿐 군인과 같다. ‘상위(중위-대위 중간)’ 직급의 안내인이 박물관을 소개한다. 3층으로 구성된 전시실은 주로 사진 자료로 채워져 있다.

‘황금의 삼각지대(Golden Triangle)’에서의 마약범죄 자료가 이채롭다. 이곳은 태국·미얀마·라오스의 3국 국경이 접하는 세계 최대의 마약 생산지다. 험준한 산악지형의 삼각지대는 아편 생산에 최적의 자연조건을 갖췄다.

과거 연간 100만 톤의 아편으로 만든 이곳의 헤로인이 세계 유통량의 60%를 차지했다. 대규모의 양귀비밭 소각 및 폐쇄, 범죄인 공개재판, 중독의 위험성 홍보 등 마약 제거를 위해 라오스 경찰은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최고의 의료시설 ‘제103 군인병원’

최근 개원한 비엔티안 시내의 제103 군인병원.
최근 개원한 비엔티안 시내의 제103 군인병원.


2019년 1월, 라오스군 창설 70주년을 기념해 최신 시설의 군 병원 ‘제103 군인병원’이 비엔티안에 개원했다. 넓은 부지에 300병상과 6개의 수술실을 갖춘 9층 규모의 대형 의료시설이다. 하루 3000여 명의 환자 진료가 가능하다는 이 병원은 열악한 의료환경을 가진 비엔티안에서 일약 명소로 부상했다. 

일반 국민이 정밀검진, 수술 등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여건에서 현역 장병들을 위한 군인병원은 라오스군 사기 앙양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영내에서 입원 장병들이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있는 모습은 한국의 국군수도병원 휴일 정경과 비슷했다.


지역전문가가 바라본 미얀마 유혈사태

다시 국경을 넘어 태국 농카이로 돌아와 메콩강 건너편 라오스를 바라보니 이웃 마을처럼 느껴졌다. 태국을 남북으로 종단해 치앙마이 국립대학교에 도착했다.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사회과학대학 아나푸티(Anaphuti) 교수는 미얀마를 오랫동안 연구한 지역전문가다.

내전 상황에 빠져든 미얀마의 수백만 난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치앙마이에서 가까운 난민촌은 태국 정부가 관리하고 있단다. 외부인은 사전에 협조해야만 들어갈 수 있지만, 그는 수시로 방문하곤 한다. 미얀마의 유혈사태는 미국·중국·러시아의 입장 차이로 사실상 해결 불가능한 상태란다. 2021년 이후 3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자국의 이익과 관련이 없으면 모두 ‘강 건너 불구경’이다.

다음 답사지 스리랑카로 가고자 방콕의 ‘돈 무앙’ 국제공항에 들렀다. 방콕에서 인도 첸나이(Chennai)를 거쳐 콜롬보에 도착하는 항공노선이다. 탑승권 창구의 분위기가 어쩐지 소란스럽다. 서류 뭉치를 내민 승객들이 항공사 직원과 다투기도 한다. 인도 정부가 모든 여행자에게 ‘코로나 검사 음성확인서’를 제출토록 입국 정책을 바꿨단다. ‘첸나이’를 경유만 하는 여행자임을 호소해도 예외가 없단다. 결국, 스리랑카 항공편을 놓치면서 네팔로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사진=필자 제공

필자 신종태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2010년 국내 최초로 군사학 박사학위를 충남대에서 취득했다. 세계 60여 개국을 직접 답사해 『세계의 전적지를 찾아서』를 냈다.
필자 신종태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2010년 국내 최초로 군사학 박사학위를 충남대에서 취득했다. 세계 60여 개국을 직접 답사해 『세계의 전적지를 찾아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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