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실에서_김희곤 교수]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입력 2023. 03. 13   15:42
업데이트 2023. 03. 1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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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곤 공주대학교 안보학 교수
김희곤 공주대학교 안보학 교수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핵심은 ‘준비된 우연’이며 ‘우연을 붙잡아 행운으로 바꾸는 힘’이다. 성공은 우연한 기회와 노력이 상호작용한 결과다. 따라서 뜻밖의 행운은 그냥 얻어질 수 없고, 오직 준비된 자의 몫으로 허락된 것이다. 세렌디피티는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행복한 사건’ 또는 ‘유쾌한 놀라움’을 의미하는 세렌디피티의 어원은 옛 페르시아의 우화 ‘세렌딥의 세 왕자’에서 유래한다. 보물을 찾아 먼 여행을 떠난 세 왕자는 그들이 간절하게 원했던 것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뜻밖의 사건(偶然·우연)으로 인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용기를 자신의 마음속에서 찾아낸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8세기 영국 작가 호러스 월폴이 ‘세렌딥의 세 왕자’를 읽고, 그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그 당시엔 신조어였을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우연은 비체계적·비합리적·비과학적이어서 언제나 불확실성의 영역에 머문다. 이로 말미암아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연을 싫어하는 속성을 지닌다. 특히 과학 분야에서 그렇다. 온전히 자기 노력이 투사된 결과물이 아니라는 방어기제가 작동해 마음속 미로게임을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는 하찮게 생각하는 뜻밖의 사건과 그것이 가져다준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기대 세렌딥 왕자의 깨달음처럼 종종 큰 걸음을 내디뎌 왔다. 세렌디피티 효과의 원조인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밀도 측정법을 생각해 낸 것과 인도에 가려다 신대륙 아메리카를 뜻밖에 발견한 콜럼버스,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 등 과학계의 중대 발견 중 30~50%는 이처럼 우연한 사고, 혹은 세렌디피티의 순간에서 비롯된 것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고 삶을 유지하는 자기만의 고유한 답을 갖고 있다. 또한 “역사는 타이밍, 인맥, 환경과 세렌디피티가 어우러져 만들어진다”는 돈 리트너의 말처럼 기존의 생존전략과 답을 진화시켜 나간다. 하늘에서 삶을 살아가는 비둘기가 포식자 매의 추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은 삶 자체고 일상이다. 평균 시속 200㎞로 날아오는 매를 고작 50㎞로 나는 비둘기가 어떻게 대응할까? 매는 자신의 속도와 비둘기의 속도를 고려해 정확한 접점을 찾은 후 계산된 그곳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매의 날카로운 발톱은 번번이 허공을 가르고 만다. 과연 비둘기는 매의 공격을 어떻게 피했을까? 매의 추격을 받기 시작한 비둘기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위기를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더구나 속도는 곧 생존이고, 하늘의 경쟁에서 비둘기는 절대 열세다. 그렇다면 거의 4배나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매를 피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더 느리게 나는 것이다. 날갯짓을 멈춰 속도를 떨어뜨리고 매가 계산한 포착 접점을 피해 가는 것이다. 이것이 일상의 삶을 이어가는 비둘기만의 스토리이며 서사(narrative)다. 이보다 훌륭한 일상의 세렌디퍼를 어디서 볼 수 있으랴!

비둘기를 쫓는 매처럼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목매고 기다리는 행운은 대개 느릿느릿 에둘러 오고, 때론 오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위기는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올 때도 느닷없이, 그것도 곧장 지름길로 온다. 의지와 능력보다 강한 것은 상상력이다. 그 시작은 생각의 틀을 바꿀 때 가능하다. 친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낯섦으로 나서는 순간이 새로운 나로 나아가는 서사의 시작이다. 비로소 경계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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