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_변원섭 예비역 대령] 퇴역 유감(退役 遺憾)

입력 2023. 03. 06   16:50
업데이트 2023. 03. 0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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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원섭 강원대학교 직장 예비군연대장 예비역 대령
변원섭 강원대학교 직장 예비군연대장 예비역 대령

 

나는 퇴역군인이다. 병역법 제72조에 따르면 현역이었던 장교·준사관·부사관이 전역해 예비역이나 보충역이 됐다가 해당 계급의 연령 정년이 되면 퇴역(退役)된다. 

누구나 영원한 현역이고 싶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비역이 되고 퇴역되는 운명을 타고난다. 어쩔 수 없는 군 생활의 섭리이다. 연령정년까지 현역에 복무했으니 나는 그래도 행복한 군인이다. 그런데도 퇴역군인이 되자 남모르는 무력감, 자괴감, 군에 대해 서운함을 느꼈다.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하는 무력감, 뒤로 물러나야 할 대상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 군이 나를 퇴물 취급하나 하는 서운함까지…. 이런 느낌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었고 퇴역한 많은 군 친구들이 그러했다.

인류학자인 사피어(Edward Sapir)와 언어학자인 워프(Benjamin Whorf)가 주장한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에 따르면 “언어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 밝고 긍정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인간의 생각도 그렇게 되고, 부정적이고 음습한 용어를 사용하면 생각도 그에 따른다는 것이다. 폭력적 용어를 많이 사용하면 폭력적 사고를 하게 되고 그 결과로 폭력 행동이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퇴(退)’라는 용어는 ‘후퇴’ 등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물러남, ‘퇴물’ 등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뒤처짐 등의 느낌이 들게 한다. 심지어 ‘퇴짜를 놓는다’와 같은 관용구에서의 쓰임도 부정적 느낌이 크다. 군 스스로 현역의 복무를 잘 마친 군인들에게 ‘퇴역(退役)’이라는 멍에를 씌움으로써 퇴역군인들 스스로 ‘퇴물’이 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부정적 느낌을 주는 ‘퇴’자가 들어간 ‘퇴역(退役)’이라는 용어보다는 임무를 잘 완수하고 물러난 군인이라는 의미로 ‘완’자가 들어가 ‘완역(完役)’이라는 말을 쓰자고 제언한다. 군인의 제1의 가치는 늘 임무완수에 있다고 배워왔으므로 평생의 임무인 조국수호의 임무를 잘 완수한 ‘완역군인’이라는 호칭이 자긍심도 높이고 정체성도 명확히 할 수 있는 용어라고 생각한다.

나는 ‘퇴역군인’보다는 ‘완역군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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