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삶_형성민 소령] 성경 속에 나타난 ‘도덕적 손상’

입력 2023. 02. 07   16:32
업데이트 2023. 02. 0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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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민 소령. 육군본부 목사
형성민 소령. 육군본부 목사

 

어떤 심각한 외상성 사건의 결과로 개인의 핵심적인 도덕적 가치나 세계관에 가해지는 상처를 의미하는 ‘도덕적 손상(Moral Injury)’은 새로운 용어이긴 하나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사실 도덕적 손상은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개념이다. 주전 5세기경에 쓰인 소포클레스(Sophocles)의 비극 중 하나인 아약스(Ajax)를 보면, 트로이 전쟁 막바지 무렵인 어느 날, 주인공 아약스는 광기에 빠져 소와 양 떼를 자신의 아군인 아가멤논과 오디세우스 그리고 경비병들로 착각하고 마구잡이로 도살한다. 다음날 제정신을 차린 아약스는 지난밤에 자신이 벌였던 살육이 떠올라 죄책감과 수치심에 사로잡혀 트로이 해안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이처럼 전장에서 자신의 도덕적 가치와 신념을 위반한 어떤 사건으로 인해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용사들의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인물이 자신의 내면에 견지한 도덕적 신념과 기대의 위반으로 영혼의 깊은 고뇌를 경험한다. 그러나 이러한 심리적인 고통으로 인하여 모든 성경의 인물들의 삶이 부적응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영적인 새로운 계기를 통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며 다시 삶의 현장과 사명으로 연결된다. 물론 다른 누군가는 삶의 부적응적인 요소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초래하기도 한다.

복음서에서 스승이신 예수님을 배신한 베드로와 유다는 모두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도덕적 고뇌를 경험한 제자들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두 제자들의 도덕적 손상으로 인한 결과는 완전히 상이하다. 유다는 도덕적 손상으로부터 회복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함으로써 역사상 ‘배신의 아이콘’이 되고 말았다. 반면 베드로는 도덕적 손상으로부터의 치유와 회복을 통해 삶의 현장과 사명으로 돌아가 수많은 기독교인들로부터 추앙받는 ‘순교자의 아이콘’이 됐다.

베드로의 경우, 친히 찾아오신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부드러운 음성을 듣게 된다. 예수님의 수제자를 자처해놓고 오히려 스승을 배신했다는 죄책감과 수치심 때문에 금방이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었던 그에게 예수님은 친히 도덕적 짐의 무게를 하나씩 하나씩 덜어주셨다. 마치 종교적인 의례처럼 베드로의 세 번의 부인을 예수님은 세 번의 질문으로 지워버리시고, 또한 예수님의 세 번의 질문에 베드로의 세 번의 고백은 과거의 실수와 잘못을 미래의 사명의 헌신으로 승화시켰다.

도덕적 손상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내담자들의 슬픔, 분노, 죄책감, 수치심, 후회, 책임감 등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과도한 감정들을 다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도덕적 고뇌와 갈등으로 일어난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다루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한 그러한 도덕적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조차 힘들 때가 많이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종교적인 의례’다. 종교적인 의례는 도덕적인 상처가 있는 그들의 과도한 감정들을 누그러뜨릴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승화시키는 힘이 있다. 하나의 의례와 같은 형식으로 다가가신 예수님을 통해 도덕적 손상을 경험한 베드로에게 새로운 인생의 장이 열린 것처럼, 그와 같은 의례는 다른 도덕적 손상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분명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여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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