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_양영채 사무총장] 인생을 여는 열쇠

입력 2023. 01. 04   16:22
업데이트 2023. 01. 0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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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채 우리글진흥원 사무총장
양영채 우리글진흥원 사무총장



아들, 아침에 일어나면 마루에 불을 켜고 네 방부터 들여다본다. 입대 1주일째. 방문은 그날 이후 열려 있다. 어둑어둑한 부엌 창밖으로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살펴본다. 네가 눈사람을 만들면서 빨간 코로 썼던 꽃사과 나무가 다행히도 조용하다. 하지만 기상청 날씨예보를 보니 그곳 기온은 서울보다 10도쯤 낮다. 체감온도는 추운 곳일수록 더 떨어지니 더 매섭겠지. 최전선이라는 게 실감난다.

“아빠, 내가 군대 생활 잘할 거 같아?”

“당연하지. 아빠도 잘했는데.”

입대 전날 아빠는 천하태평으로 대답하면서 40년도 더 지난 시절의 구닥다리 군대 이야기를 들려줬잖아. 그렇지만 왜 걱정이 없겠어. 익숙한 생활, 함께하던 정든 집과 부모 형제와의 이별이 그리 쉽겠어? 게다가 스물여섯. BTS 진보다는 어리지만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고, 10년 전 겪었던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이 아직도 남아 있잖아.

걱정 말고 훈련 잘 받아. 더 매서운 추위가 오겠지만 동지가 지났다고 해가 조금씩 길어지고 있잖아. 한 달 뒤면 입춘. 참고 견디면 따뜻한 봄이 오게 마련이야. 세상의 이치. 아빠도 처음으로 혼자가 되었네. 덩그러니 사는 게 쉽지 않겠지만 이 또한 인생이니 견디고 살아내야 하지 않겠어?

어떤 철학자는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에 놓은 C(hoice)라고 했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거야. 정말 그렇지. 우리는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답을 찾아왔어. 물론 C가 꼭 ‘선택’일 필요는 없어. 사전에는 B와 D 사이에 나오는 무수한 C가 나오고, 우리는 그 중에서 맘에 드는 걸 선택하면 돼.

1년 반의 병영생활에서도 수많은 C가 있을 거야. 행동의 자유는 좁아도 생각의 폭은 얼마든지 넓힐 수 있어. 모든 게 다 새로운 세상이니까. 부대 정문에 걸린 ‘열쇠’는 나라를 지키는 상징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문을 새롭게 여는 열쇠이기도 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네 몫이야. 본의 아니게 쥔 그 열쇠로 복무 무사히 마치고 인생의 문을 자신 있게 열어젖히길 기대해.

입대날. 아빠가 기도해 주고, 포옹도 해주려 했는데, 장난꾸러기 누나들과 노닥거린다고 못 했어. 뒤돌아보지 않고 가던 네 모습이 눈에 밟혀. 바빠 아들이 좋아하는 초코우유가 떨어졌는데도 사 두지 못했고, 옥수수도 냉장고에만 넣어두고 삶아주지 못했네. 침대 맡에 따뜻한 편지 한 통 둘 걸 하는 후회도 들었어. 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내 맘 알지?

입소 후 4시간도 지나지 않아 개설된 신병교육대 ○기 카카오톡 채팅방에는 매일 와글와글 소식이 수백 통씩 쌓여. 하긴 둘째 누나도 미국에서 국방부 시계를 돌리고 있을 정도니. 아빠도 목소리 듣고 싶지만 “아직도 전화 못받았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분들이 소식 다 나눈 뒤까지 기다릴 수 있어. 이런 것들은 나라를 지키는 큰일에 견주면 사소할 뿐이라고 생각해.

아들 덕에 아빠는 오늘도 발 뻗고 편히 잘 거야. 그렇지만 아빠도 아들을 응원하고 지키는 불침번이라는 걸 기억해주면 좋겠어. 다른 부모나 친구도 마찬가지. 누나들이 “‘아빠 금연’을 아들이 말할 때만 들었다”고, 아들만 좋아한다고 볼멘 소리하던 것 기억해? “할아버지가 면회 왔대”라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금연을 결심하게 해준 아들, 고마워. 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고, 건강하게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 대한의 아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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