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_이송희 시인] 외눈

입력 2022. 12. 29   16:51
업데이트 2022. 12. 2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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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 시인


이송희 시인
이송희 시인


한쪽 눈을 잃고서야

양쪽 눈을 얻었다

한쪽만 바라보고

한쪽으로만 걸었던

외골수 외길의 시간

외롭고도 더딘 길들

흑백의 담장 앞에서 밀고 당기며 새던 밤

앞에서 달려오던 그의 말을 자르던

편견의 깊은 동굴 속

뼈아픈 밤의 소리

이제 나는 외눈으로 내 깊숙한 곳을 본다

한쪽 눈에 담겨지는 더 넓은 들판을

너와 나, 우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말의 세계



<시감상>

우리가 믿고 주장하는 사실과 생각이란 본래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어서, 그것을 바라보는 눈의 각도와 생각의 지평에 따라 여러모로 굴절된 형상을 쓰고 재현된다. 게다가 언어는 불완전하고 생각보다 훨씬 더 모호해서 하나의 의미로 고정돼 있지 않다. 어떤 사실과 생각이 불변의 개념으로 존재할 때 편견의 늪에 갇히게 되고, 그것이 특정 집단의 군집사고로 굳어지면 언어는 그것을 대변하는 대립과 배척의 무기로 기능하게 된다.

시인은 “한쪽 눈을 잃고서야/양쪽 눈을 얻었다”라고 한다. 양쪽 눈을 가졌을 때 오히려 “한쪽만 바라보고/ 한쪽으로만 걸었던” 편견의 실체가 있었음을 성찰하고 반성한다. 그동안 “한쪽만 바라보고/ 한쪽으로만 걸었던” 뿌리 깊은 “외골수 외길의 시간”들에 대한 성찰이며, 그 언어는 “편견의 깊은 동굴 속/뼈아픈 밤의 소리”였음을 반성하고 고백한다. 시인은 비로소 외눈이 됐을 때, 우리의 마음과 사회에 만연한 편견을 극복하고 진정한 소통과 화합의 언어가 꽃필 수 있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외눈은 편견 없는 진정한 소통의 눈을 상징하는 역설의 언어다. 편견을 극복한 외눈으로 타인과 세상을 바라볼 때, 더 “내 깊숙한 곳을” 볼 수 있고 “더 넓은 들판”과 더 아름다운 “말의 세계”를 찾을 수 있다는 소망의 메시지다.

세밑에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일은 낯이 붉어지기도 하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희망을 다지는 일이기도 하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우리 안의 묶은 편견의 언어를 털어내고, 화합과 소통의 언어가 장병들의 가슴과 가슴으로, 우리 사는 세상 곳곳으로 퍼져나가기를 기원한다. 새해에 솟아오를 맑은 태양을 기다리며.

-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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