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율 종교와 삶] 행복과 불행의 간극

입력 2022. 08. 16   16:40
업데이트 2022. 08. 1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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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율 육군 8군단 산악여단 신부 대위
유병율 육군 8군단 산악여단 신부 대위

‘행복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불행이겠지요? 그렇다면, 불행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행복의 반대말이 불행이니깐 불행의 반대말은 행복일까요?’

잠깐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단어 그 자체의 의미로 보았을 때 불행의 반대말은 행복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보았을 때 불행하지 않은 상태를 행복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행의 반대말은 행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제가 가끔 하는 말장난입니다. 제가 이런 말장난을 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 불행을 피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실패하면 안돼. 실수하면 안돼. 그럼 행복할 수 없어.’ 사람들은 행복하고 싶어서 갖은 방법으로 불행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불행을 피하려고 불행에 집중된 삶을 살아가다 보니, 삶의 초점이 불행에 맞춰집니다. 그렇게 어느새 삶의 방향은 행복과는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됩니다.

저는 축구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축구는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축구를 하는 것이 마냥 즐겁지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실수를 많이 하는 날입니다. 그런 날이면,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실수하지 말자. 실수하지 말자.’

이런 생각으로 가득했던 날은 경기의 승패와 상관없이, 몸도 마음도 너무나도 지친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저의 머릿속에 ‘실수’라는 불행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행복 하자고 했던 축구인데, 행복보다는 불행에 맞춰져 있었던 것입니다.

불행에 집중된 삶의 더 큰 문제점은 막상 그 불행이 닥치면, 불행에 잠식돼버린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당연히 늘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의도치 않게 불행의 순간들이 다가옵니다. 실수하거나, 실패하거나, 때로는 건강을 잃거나, 때로는 사람을 잃을 때도 있습니다. 불행에 집중하고, 불행을 피하려고만 하다 보니, 막상 이런 불행이 닥치면 대처가 안 됩니다. 그러다 보니, 불행에 잠식돼 허우적대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실수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가끔은 건강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한번 불행이 시작됐다고 해서 행복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실수해도 행복할 수 있고, 실패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건강하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실수했다고 해서, 실패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불행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끝이 아닙니다.

저는 한때 가톨릭 신부가 되고 싶지 않아서 계획을 짜고, 노력했던 시간이 있습니다. 신부가 되는 일이 저에게 불행한 일로 생각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불행히도(?) 저는 신부가 됐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는 실패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실패한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제가 지금 너무나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행한 상황을 피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무엇을 위해서 불행을 피하고자 하는지는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불행한 상황보다는 지금 당장 ‘무엇을 하면 더 행복할 수 있을까?’를 더 많이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혹시라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불행에 잠식되지 마시고 극복해 내시길 바랍니다.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고, 누구나 다 반드시 행복해야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그리고 모든 국군장병 및 가족들 모두 행복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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