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우 종교와삶] 지키고 싶은 것

입력 2022. 08. 02   15:37
업데이트 2022. 08. 0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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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우 육군과학화훈련단 신부 대위
남동우 육군과학화훈련단 신부 대위

언젠가 천주교 청년들을 대상으로 ‘지키고 싶은 것’이라는 주제로 나눔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청년들에게 진솔한 나눔을 하고자 스스로 질문하며 답을 찾게 됐지요. 솔직히 주제를 접하자마자 내가 지키고 싶은 무언가를 간단명료하게 답으로 내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교만한 생각이었습니다. 질문을 떠올리는 횟수에 비례해 답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 둘씩 야금야금 늘어나는 교만함의 답들이 버거웠던지라 작전을 변경했습니다. 우선 ‘지키고 싶은 것들’을 실컷 나열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골라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수월하게 선택할 수 있겠노라 착각했던 것도 잠시였습니다. 이번엔 교만한 마음의 한 가운데에 있던 본질의 정체를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그 본질의 이름은 ‘욕심’이었습니다. 지키고 싶은 것 중에 어느 하나를 꼽는 작업은 제 마음속 욕심 덕분에 자연스레 ‘고민’이라는 작용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 교회로부터 사제로 서품을 받고자 준비하던 때의 다짐들이 떠올랐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기꺼이 포기할 줄 알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자며 다짐했던 초심과 반대되는 모습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지금의 부끄러운 모습조차 내 것으로 인정하고,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직시(直視)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지키고 싶은 것들 속에서 특징 하나를 꼽게 되었습니다. ‘이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잃게 되면 나에게 손해가 생길 것 같다’라는 생각을 말이지요. 이것이 없어지면 어려울 것이고, 이것이 사라지면 불편할 것이고, 이것을 빼앗긴다면 답답할 것 같은 생각들을 말이지요. 결국 반복되는 질문 속에 나열했던 것들은 ‘내가 잃어버리기 싫은 것’들로 종합됐습니다.

질문으로 마련된 종합 세트(?)를 마주하니 현 상태에 대한 자가 진단을 점차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간단명료하게 떠오를 줄 알았던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은 노력 따위는 너무나도 적었습니다. 오히려 적잖은 시간 속에 욕심으로 마련된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급급함이 더 크다는 팩트를 마주했습니다. 날것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마주하고 나서야 새삼스레 질문의 주제에 따른 범주들이 형성됐습니다. 거저 주어진 것, 포기해도 되는 것. 그리고 지켜야 하는 것으로 말이지요.

식량, 원유, 금융, 기후 등… 코로나 대유행 이후 설상가상으로 전쟁까지 이어져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다양한 위기를 맞닥뜨렸습니다. 이로 인해 아침 뉴스를 통해 접하는 요즘 기사들은 무언가를 잃어가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이러한 가운데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았으면 합니다.

“내가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말이지요.

당연히 저 또한 종종 반복해야 할 성찰 주제 가운데 하나가 돼야 합니다. 자칫 주어진 업무의 분주한 일상은 물론 기쁜 일상 속에서도 나도 모르게 망각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착각 속에 방향성 혼동할 수 있지요. 고로 국가와 국민을 지키려는 교집합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감히 권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나를 비롯한 우리가 지켜야 하는 소중한 무언가를 깜박하고 지냈다면 다시금 찾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가지 위기를 맞닥뜨린 이 시대의 내가 이루는 영점 조절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급급함의 움직임 대신에 거저 주어진 것들을 기꺼이 비워내는 움직임을 지니게 될 때 비로소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에너지에 새로운 기운을 점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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