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미 조명탄] 완료주의

입력 2022. 08. 01   15:35
업데이트 2022. 08. 0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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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변호사
이은미 변호사

출근하면서 어느 구두를 신을지 고민하며 두 개의 구두를 번갈아 신어 봤다. 두 개 다 발이 편해 자주 신는 구두였는데, 묘하게 다리가 짧아 보인다거나 옷과 안 어울리는 것 같아 어느 구두를 신어야 덜 이상해 보일지, 조금 더 예뻐 보일지 고민됐다.

남편에게 어떤 구두가 나은지 물었다. 남편은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앤디 얘기를 했다. 탈옥하는 날 저녁, 교도소장은 앤디에게 자신의 구두를 닦아 놓으라고 명령하고 퇴근한다. 앤디는 탈옥 후 그 구두를 신을 계획을 세운다. 자신의 방까지 교도소장 구두를 들고 갈 수 없으니 자신의 구두를 벗어 놓고 교도소장의 구두를 신고 나간다. 그가 교도소장의 구두를 신고 방까지 가는 동안 교도관도 만나고 동료 수감자 레드도 만나지만 한 사람도 앤디가 범상치 않은 구두를 신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도 앤디의 구두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남편은 “아무도 그의 구두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늘 신던 구두를 신고 집을 나갔다. 그냥 처음부터 발이 편한 구두를 신었으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텐데, 왜 그렇게까지 오래 현관에 머물렀을까 싶었다. 내가 일상에서 결정장애에 가까울 정도로 주저하는 건 어떤 것을 완료하는 것 자체보다 완료 이후의 평가나 시선에 신경 쓰기 때문인데, 이는 완벽주의에 기인한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고 나의 부족함을 지나치게 부끄러워하는 것은 오히려 게으르고 불성실한 것과 마찬가지인 결과를 낳을 때가 많았다.

나는 매일 무언가를 써야 하는 직업이다. 변론요지서나 의견서, 항소이유서 같은 것을 수시로 쓴다. 변론요지서를 쓸 때면 리서치한 내용은 어디쯤 넣는 게 좋을지, 어떻게 전개해야 보기 쉽게 쓸 수 있을지, 또 쉽게 이해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논리 없는 읍소만 이어져선 안 되면서도 공감을 얻어야 하고, 논리와 법리로 차분하게 사건과 거리를 두고 써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피고인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도록 사연을 나열해야 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내가 변호인이면서도 피고인의 주장이 터무니없이 느껴지거나 해서는 안 될 주장 같기도 해 문서 작성을 시작조차 못할 때도 있다. 시작만 하면 되는데, 어떻게든 쓰면 퇴고를 할 수 있는데 퇴고하려 해도 써 놓은 게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게 무언가를 미루게 되면 가슴의 묵직한 짐이 돼 일상에 불안감과 부담감을 준다. 또 잠재의식에 쌓여 있다가 별것도 아닌 일에 이 부담감이 합쳐져 반응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늘 글을 쓰는 것은 시작이 어렵다. 대학원 석사 논문을 작성해야 하는데, 주제를 잡고 고민만 하다가 졸업도 못 하고 영구 수료생이 되고만 전력이 있다. 그래서 재입학해 석사 논문을 작성하려고 하는데, 논문을 쓰고 있지도 않으면서 논문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도저히 논문을 쓸 수 없는 이상한 상태로 지내게 됐다.

결과적으로 게으른 것과 같이 됐지만 그 원인은 역시나 ‘완벽주의’ 때문이다. 글쓰기만 해도 그렇다. 글쓰기에 적절한 환경과 좋은 구성, 글을 쓰고 난 다음의 흡족함, 흠 없는 문장과 부적절하지 않은 주제 등 글쓰기를 주저하게 하는 여러 요인이 있다. 그러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쓰레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으면 글이 써질 것이라는 조언을 받았다.

좋은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힘들지만, 쓰레기를 쓴다고 생각하면 자신감이 생긴다. 쓰레기라도 퇴고를 거듭하면 나아지겠지! 나는 ‘완벽주의’를 버리고 다소 부족하지만 ‘완료주의’를 추구하기로 했다. 일상에서 가지는 완벽주의에 대한 부담을 벗고 일단 완료한다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마음이 담백해지는 것 같다. 이 글도 ‘완료주의’라는 마음가짐으로 썼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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