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경 교수실에서] 충성대의 아름다운 소리

입력 2022. 07. 11   15:34
업데이트 2022. 07. 1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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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경 중령·육군3사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강경 중령·육군3사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요즘 충성대에는 멋지고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일반 학기를 마친 생도들이 8주간의 하계 군사훈련을 받으며 우렁찬 함성과 군가 소리로 포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옛 선조들은 하늘 아래 세 가지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고 했다. 준마식초성(駿馬食草聲)은 잘 단련된 말이 푸른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리, 미인탄금성(美人彈琴聲)은 아름다운 여인이 가야금을 타는 소리이며 청년독서성(靑年讀書聲)은 젊은이가 열심히 책을 읽는 소리다. 필자는 생도들의 하계 군사훈련을 지켜보면서 ‘충성대의 아름다운 소리’ 한 가지를 추가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생도보애성(生徒步曖聲)이다. 생도들의 힘찬 발걸음 소리와 거칠게 쉰 목소리라는 의미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는 그들의 열정과 패기 넘치는 함성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그것이 새로운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 청년사관들의 모습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생도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의 위중한 안보 현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한반도와 동북아는 주변 열강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안보 딜레마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특수성 속에서 대한민국은 안보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마키아벨리(1469~1527)가 『군주론(De Principatibus)』에서 제시한 핵심 키워드로 이야기하자면 지금 대한민국은 ‘포르투나(Fortuna)’와 ‘네체시타(Necessita)’, 즉 외세의 힘과 불가피한 안보 현실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르투(Virtu)’와 ‘프루덴차(Prudenzia)’, 즉 주체적인 역량과 현실에 대한 올바른 판단능력을 키워야 한다. 필자는 하계 군사훈련 기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생도들이 위기의 시대에 이 나라의 비르투를 키워 줄 핵심 주역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대한민국의 운명이 생도들의 어깨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이 힘든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훌륭한 군인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필자는 최근 제2차 세계대전사를 연구하면서 한 가지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됐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는 게 반드시 탁월한 리더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전쟁사는 다양한 사건사(事件史)로 구성되고 하나의 사건사에는 수많은 인물의 실천적 행위들이 집약돼 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꾼 국면사(局面史)도 결국 수많은 사건사가 모여 이뤄지는 것이기에 역사의 주체는 다름 아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우리 시대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군복을 입고 있는 모든 이가 영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순간 하계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사관생도들도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부르고 싶다.

제2차 세계대전의 국면을 전환시킨 노르망디상륙작전을 앞두고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 장군은 전 장병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위대하고 고귀한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신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Let us all beseech the blessing of Almighty God upon this great and noble undertaking)”는 메시지를 남겼다. 필자는 사관생도들이 선택한 군인의 길도 아이젠하워 장군이 전한 ‘위대하고 고귀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폭염의 날씨에도 하계 군사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사관생도들의 도전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그들이 들려주는 생도보애성, 충성대의 아름다운 소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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