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지뢰 꽃밭

입력 2022. 04. 28   16:27
업데이트 2022. 04. 2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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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숙 시인
황병숙 시인

민통선 지나서 할아버지 밭에 가는 길

철조망 지뢰밭에 들꽃이 한창입니다

아무도 밟지 못하는

지뢰 꽃밭 환합니다



출입금지 표지판이 무색하게 넘나들며

꽃들이 점령한 지뢰밭은 자유롭습니다

새들은 날아오르고

지뢰 꽃밭 피고 집니다



시 감상

우리는 시의 의미를 분석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시를 읽지 않는다. 시는 애써 찾은 지식을 알려주거나 당위성으로 무장한 신념(이념)을 주장하는 무기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시는 다만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인데, 그 ‘보여지는 그림’이 언어의 붓이 전달하는 느낌이다. 시를 읽는 것은 바로 이 느낌, 때로는 멀어서 아득한 듯하면서도 어느덧 가슴에 흘러들어와 저절로 출렁이는 울림의 소리를 그냥 듣고 보고 느끼는 서정이다.

여기 한 아이가 민통선을 지나간다. 철조망에 출입금지 표지판이 빨간 신호등처럼 불쑥불쑥 나타나 경고하는 철조망 너머는 위태롭기 그지없는 곳인데, 아이의 눈에는 ‘들꽃이 한창’이다. ‘아무도 밟지 못하는’ 그 위험천만한 지뢰밭이 맑은 동심의 눈에는,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 환한 ‘꽃밭’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인 듯하다. 동심이 눈이 보여주는 ‘지뢰 꽃밭’의 그림은 ‘새들’이 ‘날아오르는’ 자유로운 공간처럼 보인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꽃과 지뢰라는 적대적 어감이 동심에 이끌려 친밀한 어울림의 이미지로 치환되는 느낌이 새롭다.

흔히 이념으로 갈라진 문장은 이념의 문법으로 봉합하기 어려워서 새로운 어법으로 다시 써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진부한 이념을 주장하지 않으면서, 다만 전통적인 시조 운율에 현대성의 옷을 입혀 노래한다. 착한 동심의 소리는 적대적이거나 다급하지 않다. 그 소리는 순하고 깊어서 무서운 지뢰밭에 평화와 자유가 어우러진 꽃을 피워낸다. 설사 그것이 작고 먼 소망이라 하더라도 작은 물방울이 어울려 내를 이루듯이 순수한 소망의 샘은 마를 날이 없는 것이어서, 어느 밝은 날 저절로 큰 물줄기를 이루고 흐를 듯싶다. 이 동시조가 수록된 동시조집 표제 『햇살 말랑말랑』한 봄노래처럼. 


-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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