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종교와삶] 자심안위(自心安危)? 노심초사(勞心焦思)!

입력 2021. 08. 17   16:11
업데이트 2021. 08. 18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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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공군 작전사령부 군종실장 법사·중령
김용호 공군 작전사령부 군종실장 법사·중령

우리의 주적은 누구인가?

군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보고 생각해본 물음일 것입니다. 현재 국방백서엔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고 포괄적으로만 명시돼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위협이 되는 세력을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위태롭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우리 삶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주적을 아는 것입니다. 자유와 생각, 그리고 삶에 대해 큰 위협을 가할 의도와 능력을 갖춘 주적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의 번뇌입니다.

인도의 고승 샨띠데바의 입보리행론을 살펴보면 우리의 주적인 번뇌라는 원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미움 등의 나의 원수는

손도 발도 없고

지혜롭고 용맹스러운 것도 아닌데

이와같이 그것들은 나를 종처럼 부립니다.



더욱이 그것들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희희낙락거리면서 나를 괴롭혀도

나는 그것들에게 성낼 줄도 모르고 견디기만 하니

이는 옳지 않은 인내이기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국군 장병들은 외부세력의 도발에 즉각 대응하고 언제나 단호하게 응징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아무리 강력한 적이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울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지만, 과연 우리 내면의 번뇌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완벽한 대비가 되어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무엇부터 준비해나가야 할까요?

직장 동료, 가족, 이웃 등 누군가에 대한 사랑과 미움 등의 번뇌로 애태우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 못 드는 긴 밤을 지새운 적이 언제인가요? 이러한 번뇌로 인해 삶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이 일어납니다. 제어되고 응징되지 않은 이러한 번뇌들은 결국 우리를 점령하고 끊임없는 삶의 고통과 혼란을 가져옵니다. 이러한 현실을 법구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 못 드는 이에게 밤은 길고

피로한 이에게 길은 멀어라

어리석은 이에게 삶은 기나니

바른 법을 알고 있지 못하다면.”



번뇌를 없애고 고통이 없는 세계로 가기 위해서 시작해야 하는 것은 바로 대상의 본질을 고요한 집중적 사고와 통찰력(止와 觀)을 통해서 ‘있는 그대로’ 직관하여 파악하는 지혜인 정견(正見)입니다. 부처님은 알고 보는 자만이 번뇌를 소멸시킬 수 있고,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는 번뇌를 소멸시킬 수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국가의 안위를 마음으로 애쓰고 속을 태운다는 뜻의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자기 정신의 안위를 마음으로 애쓰고 속을 태운다는 뜻의 자심안위노심초사(自心安危勞心焦思)라는 말로 바꾸어보면 어떨까요? 국가의 주적을 알고 확실한 대적관으로 국가의 안위를 위해 애쓰는 것처럼, 자신의 삶의 주적인 번뇌를 확실히 알고 마음의 안위를 위해 애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번뇌의 위협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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