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 조명탄] 훈장을 단 여인

입력 2021. 07. 28   16:31
업데이트 2021. 07. 2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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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건 대한외상학회장/인하대 의대 교수
황 건 대한외상학회장/인하대 의대 교수


‘크림전쟁의 마더’ 간호사 메리 시콜
피부 검다는 이유로 활약 가려져
그녀의 초상화 발견되며 재조명
나는 어떤 의사로 기억될까?
자신 되돌아보는 시간 갖게 돼



최근 가족과 함께 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시대의 얼굴’이라는 전시회를 관람했다. 몇 해 전 연구년으로 런던에 3개월 동안 머무를 때 트래펄가 광장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옆에 위치한 ‘국립초상화박물관(national portrait museum)’을 세 번 관람했는데 그때 본 그림들을 또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1세, 아이작 뉴턴, 셰익스피어, 찰스 다윈 등 500여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세계 역사와 문화를 빛낸 76명 인물들의 초상화가 전시돼 있었다. 작품 중에는 100호가 넘는 큰 것들도 있었지만, 이번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6호 정도로 보이는 가장 작은 초상화였다.

얼굴에 주름이 많은 여자의 옆모습이었다. 얼굴이 갈색이고 머리카락이 짧고 곱슬머리였는데, 왼쪽 귓불의 귀고리와 목에 두른 빨간 스카프로 여자인 것을 알아차렸다. 왼쪽 가슴에는 3개의 훈장이 나란히 달려 있었다. 검은 테두리를 한 작은 액자 속 여인이 훈장을 달고 있는 사연이 궁금해 음성 안내에 귀를 기울였다.

“메리 시콜은 빅토리아 시대에 활약한 자메이카 출신 물라토인 간호사다. 1853년 크림전쟁에서 의료인들이 부족하다는 공고를 보고 런던으로 가서 나이팅게일 간호단을 비롯한 여러 전쟁사무소에 지원했으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자비를 들여 최전방에 치료소를 설립해 부상한 병사들을 치료해 ‘마더’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전쟁 후 그녀의 존재는 잊혀졌지만 1857년 그녀의 자서전이 발행됐으며, 간호를 받았던 병사들이 그녀를 지지해 터키·영국·프랑스에서 훈장을 받았다. 나이팅게일에게 가려져 사후 1세기 넘게 잊혔던 이름은 2005년 우연히 액자 뒷면에서 그의 초상화가 발견되며 재조명받아 미술관에 전시하게 됐다.”

그림 아래에는 살만 루슈디가 쓴 ‘악마의 시(The satanic Verses)’의 구절이 적혀 있었다. “보라. 여기 메리 시콜이 있다. 크림반도에서 등불을 비추던 나이팅게일만큼이나 큰 공을 세웠으나,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나이팅게일의 불빛에 가려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여.”

집에 돌아와서는 『마더 메리-나이팅게일에 가려진 검은 천사 메리 시콜』이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 읽었다. 나이팅게일보다 나이가 15년 위인 시콜이 만약 기록을 남기지 않았거나 자서전으로 완성하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업적 또한 기억되지 못하고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액자 속에 덧대는 종이로 쓰이던 그 초상화가 영국 한 마을의 그림 시장에 매물로 나왔을 때 한 역사가가 우연히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그녀의 유일한 초상화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문득 의사로서 39년째 활동하고 있는 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지 생각해 봤다. 많은 사람을 수술했지만 내가 집도한 수술의 숫자를 헤아려본 적이 없었다. 비슷한 수술 수십, 혹은 수백 건을 모아 통계를 내 논문에 실은 것들이 있을 뿐이다.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거나 수술에 도움되는 해부학적 구조물들을 발견한 경우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3년 전에는 ‘과학기술훈장’을 받았다. 정년이 돼 퇴임식에서 ‘근정훈장’을 받게 되면, 나의 초상화를 그릴 때 훈장을 두 개 달고 싶다. 그리고 나의 논문들이 인용되는 것으로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준다고 믿고 싶다. 누군가가 나를 두고 “여기 황건이 있다. 비록 화려한 조명을 받은 적이 없지만, 성형외과 영역의 수술해부학에 기여했다”라고 평해 준다면 나는 더 이상 기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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