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년 전 오늘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이후 판문점은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의 회담 지원을 위해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으로 지정됐다. 판문점은 ‘널문리’로 불리던 지역 이름이고, 공동경비구역은 기능을 고려한 공식 명칭이다. 쌍방 간 공식 회담을 진행하기 위해 양측이 경비도 공동으로 담당하는 특수지역이다.
판문점은 쌍방 간 대화를 위한 공간이었지만, 군사적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1968년에는 북한군이 근무교대를 위해 병력수송 중인 미군 트럭을 습격하여 아군 4명이 사망했다. 1976년에는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도중 북한군 수십 명이 도끼와 흉기로 아군을 구타, 살해했다. 미군장교 2명이 사망했고, 6·25전쟁 후 처음으로 데프콘-Ⅱ가 발령되기도 했다. ‘도끼 만행사건’이다. 이 때를 계기로 공동경비구역 내에도 군사분계선이 그어졌다. 2017년에는 북한 병사가 판문점으로 귀순한 사건이 있었다. 추격하던 북한군이 발사한 총알 자국이 아직도 우리 측 건물 벽에 남아있다. 이처럼 판문점은 대화의 상징이자, 군사적 대치의 공간이라는 이중성을 띠어왔다.
2018년 ‘9·19 군사합의’ 이후 판문점은 큰 변화를 겪었다. 남북군사당국은 DMZ 평화지대화 방안 중 하나로 ‘JSA 비무장화’에 합의했다. 합의서에는 판문점 지뢰제거, 인원 및 화력장비 철수, 감시장비 공유, 공동검증, 자유왕래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많은 국민은 판문점에서 훤칠한 군인들이 권총을 차고, 선글라스를 낀 채로 북한군과 마주 선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지금 판문점에 무장한 군인은 없다. 공동경비구역 지정 당시에는 권총 휴대를 허용했지만 ‘9·19 군사합의’ 이후 판문점은 비무장 상태로 공동경비를 하고 있다. 삼엄했던 양측 초소는 폐쇄됐다. 남북은 비무장화 조치에 대한 상호 검증도 진행했고, CCTV 영상도 공유하고 있다.
합의 내용을 모두 이행했다면 남북측 지역을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자유왕래까지 진전되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판문점이 국방부의 표현대로 ‘총 한 자루 없는 평화의 상징’으로 변모한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
최근 일각에서는 경색된 남북관계 상황을 언급하며 ‘9·19 군사합의’가 사문화됐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9·19 군사합의’ 이후 판문점에서의 군사적 출동 가능성은 현격히 줄었다. ‘평화의 상징 판문점’을 방문하는 우리 국민은 2018년 4월에 있었던 ‘판문점 선언’의 감동을 떠올린다. 코로나로 잠시 중단됐지만 2019년 5월 이후 판문점을 방문한 인원은 3만2000여 명에 이른다. 아무쪼록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조치가 진전돼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해당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