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들과 다른 방법으로 군에 기여하고자 교수의 길을 선택했다. 혹자는 20년을 향해 달려가는 장교 생활의 4분의 3을 교육 분야에 있었으니 교육에 있어서는 전문가이지 않은가, 뭘 그리 고민하나 질문하기도 한다.
처음 교단에 설 때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수업이라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전달하면 되는 것이니, 교수인 내가 지적으로 충분히 준비해서 가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것이 오산이었음을 깨닫는 데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학습자의 무관심한 눈빛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어떤 이들은 내게 화가 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해왔는데 왜 저런 표정을 보이는 것일까?
여러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겠으나, 최근 내가 무게를 싣는 부분은 교육현장에서 나의 상대역인 학습자에 대한 공감이다. 공감은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의 경험의 일부가 돼 그 느낌을 공유하며 그것을 통해 상대방과 소통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뇌과학의 시각에서 본 인간은 기본적으로 거울 뉴런이라는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 공감하며 연대할 수 있고, 이 공감능력 덕분에 인간은 여러 위기를 극복하며 현생하는 종(species)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교육현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 무료함과 졸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학습자의 생존을 돕기 위해 교수가 먼저 호모 엠파티쿠스(Homoempathicus), 즉 공감형 인간이 돼야 한다.
호모 엠파티쿠스의 시작은 교수자가 학습자의 현 상태 또는 특수한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의 학습자인 생도는 학과(일과 중)와 훈육(일과 후)이라는 서로 다른 학습이 같은 공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 둘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수업 시작 때 짧은 인사, 가령 월요일 아침 수업 시 “생도대에서 주말 동안 ○○ 이벤트를 했다던데”와 같은 한마디를 건네면 학과-훈육의 연속선 위에 놓여 있는 학습자에게 수업에 대한, 최소한 교수자에 대한 긍정적 감정을 불러올 수 있다. 학습자가 교수자에게 갖는 긍정적인 감정은 수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교수자가 호모 엠파티쿠스가 되는 또 하나는 비위(非違)가 아닌 그야말로 해프닝이 생겼을 때 규칙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규칙은 사실 예규평가를 받는 피교육생이 제일 잘 알고 있다.
나도 학습자 시절에 빈 강의실에서 잠이 들어 시험시간에 교수님보다 늦게 도착한 적이 있다. 하얗게 질려 나타난 나에게, 교수님은 “시험 준비하느라 속이 안 좋은가 보네”라는 말 외에는 한마디도 묻지 않으셨다. 그분 덕으로 지금의 이 자리에 있는 나는, 가끔 수업시간에 늦는 학습자를 접하면 “태도 점수 감점”이라고 외치기 전에 내 경험담을 들려주고 곧 평안해지는 그들의 얼굴을 본다. 인간은 자신과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 대해 들으면 주체성에 관여하는 신경세포들이 반응하게 되는데, 이 주체성 또한 학습에 필수적인 요소다.
교수자의 학습자에 대한 작은 관심과 배려가 학습 몰입에 큰 변화를 불러온다는 것은 과학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군 내 교육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학습자를 위한 호모 엠파티쿠스가 될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