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보령 수영성

입력 2021. 05. 25   14:15
업데이트 2021. 05. 2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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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 수영성 연구의 사료로 큰 가치


외세 침략 대항한 국난극복의 현장

바다 한눈에 보이는 ‘영보정’ 복원
해산루·성벽 일부도 제 모습 찾아
옛 성곽 보존 위해 연구·발굴 지속


충청수영성의 전경. 왼쪽 언덕으로 복원된 성벽이 보인다. 성 앞쪽 오천항에 낚싯배들이 가득하다.
충청수영성의 전경. 왼쪽 언덕으로 복원된 성벽이 보인다. 성 앞쪽 오천항에 낚싯배들이 가득하다.


■ 5대 수영 중 하나


충청도 해안을 방어하는 최고 사령부 역할을 했던 충청수영은 전라좌수영·전라우수영·경상좌수영·경상우수영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수영 중 하나다. 충청수영성을 제외한 나머지 수영성들은 대부분 일부 성곽만 남아 있거나 흔적을 찾기 어려운 상태여서 조선 시대 수영성 연구의 사료로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물론 충청수영성도 완벽하게 복원된 상태가 아니라 일부만 남아 있지만, 성내에는 절경을 자랑하는 정자 ‘영보정(永保亭)’과 충청수영 관내의 빈민 구제를 담당하던 ‘진휼청(賑恤廳)’, ‘객사(客舍)’, ‘삼문(三門)’ 등이 제 모습을 찾았다. 또한 수군절도사가 생활하던 내아(內衙) 영역에 대한 발굴조사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계란 모양으로 축조된 모습의 충청수영성은 1510년 수사 이장생이 돌로 쌓은 성이며 1896년 충청수영이 폐영된 뒤 방치돼 왔다. 현재는 아치형의 서문을 비롯해 성곽 1,650m가 남아 있다.

충청수영성 안에 있는 정자 ‘영보정’에 오르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경이 눈에 들어온다. 영보정은 1504년 수사 이량이 처음 지었고 계속 손질하며 고쳐왔다고 한다. 충청수영 폐영 후 없어져 터만 남아 있었지만 2015년에 복원됐다.
충청수영성 안에 있는 정자 ‘영보정’에 오르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경이 눈에 들어온다. 영보정은 1504년 수사 이량이 처음 지었고 계속 손질하며 고쳐왔다고 한다. 충청수영 폐영 후 없어져 터만 남아 있었지만 2015년에 복원됐다.
조선시대 물가조절과 기민구제를 담당하였던 진휼청.
조선시대 물가조절과 기민구제를 담당하였던 진휼청.


■ 서해안 지역을 보호하는 충청수영성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은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하면서 왜구가 침탈을 방지하고, 충청도 지역의 수군 지휘부 역할을 하였다. 이에 수군 편제와 조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9호 보령 오천성으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8월 24일 사적 제501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유격장군 계공 청덕비.
유격장군 계공 청덕비.
조선시대, 각 군영 및 지방 관아의 군무에 종사하던 낮은 벼슬아치였던 장교들의 관청인 장교청.
조선시대, 각 군영 및 지방 관아의 군무에 종사하던 낮은 벼슬아치였던 장교들의 관청인 장교청.
■ 편집 = 이경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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