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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일보

2021.06.23(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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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수 없는 순간까지… 아버지 만나러 올게요”

기사입력 2021. 06. 22   17:07 입력 2021. 06. 22   17: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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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추모의 현장에서] ③ 이천호국원 <끝> 한달에 한번은 꼭 찾는다는 딸 부부 유모차 끌고 조부 만나러 온 세자매 하루종일 추모객 발걸음 이어져2023년까지 5만기 규모 확충 추진 온라인 참배·헌화 서비스 등 시행 게시판에 유가족 감사 글 잇따라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남쪽 해발 310m의 노성산 자락에는 특별한 호국의 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조국수호를 위해 신명을 바친 수많은 국가유공자 및 참전유공자가 영면한 ‘국립이천호국원’이다. 21일 이천호국원에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찾아온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은 시간까지 계속 이어졌다. 참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많은 유가족들이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다시 묘역 방향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에는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고인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담겨있었다. 봉안담 형식의 묘역 26구역 국립이천호국원에 들어서면 푸른 기와지붕이 인상적인 현충문과 그 너머로 우뚝 선 26m 높이의 현충탑이 추모객들을 맞이한다. 순국선열의 영혼을 상징하는 동그란 구(球)를 두 손이 떠받들고 있는 구조의 현충탑에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한 호국영령의 위훈을 영구히 추앙하고 명복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 앞을 지나면 묘역과 일반 지역의 경계선이라 할 수 있는 홍살문이 나온다. 옷깃을 여미고 엄숙한 표정으로 홍살문을 통과하는 추모객들의 손에는 꽃다발과 각종 제수용품이 들려있었다. 호국원이 운영하는 묘역순회차량에 탑승해 묘역으로 향하는 유족들도 있었다. 이천호국원의 묘역은 총 26구역으로 모두 야외 봉안담 형식으로 조성됐다. 호국영웅의 유골을 봉안담(벽)에 안치하고, 안치단에 작은 문을 설치해 참배 온 유족들이 언제든 개방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봉안담 벽면에는 대한민국의 국난 극복 및 조국 발전의 역사가 벽화로 그려져 호국정신을 생생히 전해주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 저희 왔어요!” 13구역에서는 한 남성이 안치단에 놓인 부모의 생전 사진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6·25전쟁 참전용사 고(故) 이상형 육군병장의 아들 이재청(64) 씨였다. 서울에 사는 이씨는 아버지 기일을 맞아 아내, 두 아들과 함께 호국원을 찾았다. 이씨 가족이 안치단 앞에 사과, 배, 막걸리, 말린 생선과 캔커피를 올려놓고 경건히 예를 갖춘 뒤 절을 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 달달한 커피를 워낙 좋아하셨어요. 좋아하시던 걸 다시 맛보여드리고 싶어서 올렸어요.” 참배를 마친 이씨가 말했다. 그는 여전히 부친을 존경하고, 또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씨는 “참전용사셨던 아버지는 전역하신 이후 새벽부터 농사일을 나가셨고, 집에 돌아와서는 가정을 충실히 돌보시는 훌륭한 가장이셨다”며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을 때면 수시로 이곳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24구역에서는 봉안담 앞에 홀로 선 채 조용히 생각에 잠긴 중년의 여성이 눈에 띄었다. 6·25 참전용사이자 따뜻한 아버지였던 고 박근하 육군하사를 만나러 인천 영종도에서 온 박순덕(63) 씨였다. 해외에서 사는 동생과 고령인 어머니를 대신해 딸이 혼자 참배를 온 것이다. 박씨는 “어제가 아버지 생신이라 찾아왔다”며 “아버지 돌아가실 때 병환으로 참 많이 고생하셨는데, 지금이라도 잘 지내시라고 마음속으로 인사했다”고 말했다. 그 목소리에 잔잔한 슬픔이 묻어났다. 고 박 하사는 딸에게 많은 추억을 선물했다. 박씨는 “어릴 적 소풍날이면 오징어를 작게 잘라 준비해주시던 아버지의 자상한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저에게 참 각별했던 아버지셨다”며 눈물을 훔쳤다.

김상윤 기자 < ksy0609@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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