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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일본의 갈등 뒤에 유럽제국주의가 있었다

기사입력 2021. 05. 12   16:26 입력 2021. 05. 12   16: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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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단초 청일전쟁의 기원/김석구 지음/퍼플 펴냄



필자는 2015년 육군 대령으로 전역했으며 국제정치, 국가안보전략, 전쟁사 분야의 연구와 집필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 책에서는 동아시아로 진출해오는 러시아의 군사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완충공간 확보를 위해, 한반도를 선점하려 했던 일본이 영국의 묵인 아래 청일전쟁을 도발했음을 설명하고 있다.

‘신(新)제국주의시대’라고 불리는 19세기 마지막 20년에는 유럽제국들의 식민지 쟁탈전이 가열됐다. 아울러 나폴레옹 전쟁(1796-1815) 이후 격화된 영국 대 러시아의 유라시아 패권대결 구도와 독일 대 프랑스의 유럽 역내 갈등구도가 중복됐고, 증기선을 이용한 해운체계를 통해 지구화 현상이 가속화 했다. 1894년 7월 일본군의 경복궁 무력점령으로 시작되어 이듬해 4월 종료된 청일전쟁은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발생한 국제전쟁이었다.

독일제국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러·불 동맹군과의 양면전쟁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러시아의 군사력을 동아시아로 유도하는 대외전략을 취했다. 이는 일본으로 하여금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개통 이전 러시아와의 일전을 준비하도록 자극했다. 즉, 비스마르크의 대외전략이 러시아의 TSR 건설을 촉진시켰고, 전통적 영·러 패권대결의 장소를 ‘발칸반도·터키해협’에서 ‘한반도·대한해협’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일본은 TSR을 군사적 위협으로 간주했고, 러시아는 동북아 해역에서 부동항을 얻어 해양으로 진출한 뒤 인도를 탈취하려 했으며, 영국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일본을 이용해 동북아에서 러시아를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일본은 이를 역이용해 영국을 등에 업고 청국에 대한 군사도발을 단행했다.

한반도에서는 이 전쟁에서 패전한 중국의 세력이 제거됐고, 이후 일본 대 러시아의 대결 구도 밑에 놓이게 됐다. 이처럼 불안정한 러·일의 한반도에 대한 세력다툼 구도는 10년 뒤 러일전쟁의 발발로 연결됐고, 쓰시마 해전에서 패배한 러시아가 한반도 및 만주에 대한 이권을 포기함으로써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필자는 끝으로 유라시아 대륙국가 대 외곽 해양국가 사이의 19세기 말 세력권 대결 논리가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한미동맹을 공고히 유지 발전시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박지숙 기자



박지숙 기자 < jspark2@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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