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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경 재 천년지대군] 군대, 공부 좀 해라!

기사입력 2021. 03. 15   16:28 입력 2021. 03. 15   16: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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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경 재 육군3사관학교 심리학 교수·중령

“공부 좀 해라!”

학창 시절 많이 듣던 말이다.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도 책상에 앉으면 잔소리는 끝난다. 공부를 곧잘 하는 친구들은 자기가 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책상에 앉자마자 책을 펴고 공부를 한다. 그 모습이 신기했다.

나는 한국군·경·소방상담학회 회원이다. 처음엔 군상담학회였는데 경찰과 소방 영역으로 확대됐다. 그 과정에서 여러 경찰관과 소방관을 만났다. “저희는 군인의 트라우마와 같은 심리적 문제를 돕고 연구하는 학회입니다. 경찰과 소방도 함께 해주세요”라고 말하면 그분들의 공통된 반응은 이랬다. “군인이 트라우마가 있어요? 전쟁도 없잖아요.”

경찰관은 항상 범죄와 전쟁을 한다. 칼을 들고 달려드는 폭력배들, 마구잡이 난동을 부리는 취객들과 싸운다. 소방관은 화재와 전쟁을 한다. 사망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해서 시신을 옮기고 생사의 현장과 싸운다. 집에 와서 가족에게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동하고 잠을 청하지만, 위기의 순간과 끔찍한 순간이 떠올라 잠을 잘 수 없다고 한다. 진짜 트라우마다.

트라우마(trauma)는 심리학에서 정신적 외상(外傷)을 뜻한다. ‘상처’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트라우마트(traumat)’에서 유래했다. 어원은 ‘살갗이 찢어지는 상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정도 상처면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남는다. 마음에도 말이다. 전통적으로 트라우마 연구는 전쟁에 참여한 군인과 성폭행 피해자를 대상으로 많이 이뤄졌다. 두 케이스의 공통점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 마음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경찰관은 법과 질서, 범죄를 공부한다. 소방관은 화재와 사고를 공부한다. 그렇다면 군인은 무엇을 공부해야 하나?

군대는 적과 싸워 이겨야 하는 집단이다. 전쟁을 수행한다. 전쟁은 궁극적으로 집단 폭력의 장이다. 군대는 다분히 용맹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을 지킬 수 있다. 사납고 맹렬한 전사적 기질은 우리 군이 갖추려는 품성이다. 하지만 전사적 기질을 갖추고 난 뒤의 트라우마는 모른다.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목숨 바쳐 지키는 숭고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모든 공직자가 국민을 지키지만, 공식적으로 목숨 걸고 임무를 수행하지는 않는다.

군인들은 군복 착용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생도들도 어디서 배웠는지 “우리가 입는 전투복은 수의(壽衣)입니다”라고 한다. 시신에게 입히는 수의를 입고 근무하는 군인들, 과연 전쟁의 본질적 속성인 폭력과 죽음을 공부하고 있는가? 실제 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동료가 전사(戰死)하면 내 마음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적을 사살하면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지, 내가 발사한 포탄이 날아가 적이 괴멸되고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내 마음엔 어떤 상처가 남는지, 전투가 끝나고 휴식을 취할 때 잠은 편히 잘 수 있는지에 대한 공부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참전용사가 마음속 전투를 치르고 있다. 동료를 잃은 상처, 적을 사살한 상처, 수많은 시신을 목격한 상처들로 전쟁이 끝난 후에도 마음속 전투를 치르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희생으로 되찾은 평화를, 정작 참전 군인은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기 힘들다. 국민 모두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갈 때, 군대만은 전쟁, 즉 죽음과 폭력 속에 놓일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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