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성벽 속에 깃든 아픈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본다

입력 2021. 02. 09   17:34
업데이트 2021. 02. 16   07:11
0 댓글


■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南漢山城)’


우리나라 산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한 ‘남한산성’은 사적 제57호로 북한산성과 함께 한양을 지켜온 2대 산성으로 서울에서 근거리에 있는 초대형 산성이다. 특히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시차를 두고 외성과 본성이 구축됨으로써 우리나라 산성의 발달사를 쉽게 알 수 있는 좋은 예로 남아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고,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한 인조가 적의 포위 속에 버티다 결국 청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멋진 성벽과 함께 수많은 문화재가 내부에 산재하고 현재까지도 성 내부에 주민이 살고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남한산성의 매력에 빠져보자.  ■ 편집 = 이경하 기자


전승문인 북문에서 봉암성 방향인 오른편으로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중간쯤에 나오는 제4 암문. 성문 안에서 바깥으로 나올 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식의 특이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전승문인 북문에서 봉암성 방향인 오른편으로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중간쯤에 나오는 제4 암문. 성문 안에서 바깥으로 나올 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식의 특이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 항쟁의 역사 가득


남한산성은 해발 500m에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아 자연지형을 따라 둘레 11.76km의 성벽을 구축하고 있다. 이중 외성과 옹성을 제외한 본성의 규모는 둘레가 7,545m이며 내부 면적은 212만 6,637㎡에 이른다.

남한산성이 처음 축조된 것은 신라 문무왕 13년(673)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이름은 ‘주장성(晝長城)’으로 불렀으며 나당 전쟁을 하며 병력과 물자를 조달했다고 한다. 이후 고려 시대에는 몽골군의 침입에 항전하는 거점이 되기도 했다. 지금의 모습으로 개축된 것은 조선 시대 인조 2년(1624년)으로 알려졌다.

남한산성에는 크게 동문인 좌익문(左翼門)과 서문인 우익문(右翼門), 남문인 지화문(至和門)과 북문인 전승문(全勝門) 등 4개 성문이 있다. 동문인 좌익문은 남한산성의 남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성문 옆으로 도로가 개설돼 성벽은 허물어져 있고 현재 이 문은 보수공사 중으로 온전한 제 모습을 볼 수는 없는 상태이다.


장수가 지휘와 관측을 하던 곳인 수어장대. 인조 2년(1624년) 설치됐는데 원래는 남한산성에 5개의 장대가 같이 지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수어장대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장수가 지휘와 관측을 하던 곳인 수어장대. 인조 2년(1624년) 설치됐는데 원래는 남한산성에 5개의 장대가 같이 지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수어장대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 동·서·남·북문



동문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수구문(水口門)은 성벽 보수·정비공사로 인해 어수선하다. 서문인 우익문은 가장 작지만, 남한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군과 전투가 있었던 곳인데 나중에 인조가 세자와 함께 청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항복할 때 이 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현재 서문 역시 보수공사 중이다.

남문은 성문 가운데 가장 크고 웅장하다. 조선 정조 때 성곽을 보수하며 지화문이라 이름 지었다. ‘화합하고 화목하라’는 뜻인 지화는 백성들과 신화들이 화목하기를 바라는 정조의 염원이 담겨 있다.

북문인 전승문은 병자호란 당시 성문을 열고 청나라 군사와 전투를 치른 곳으로 유명하다. 비록 적의 유인작전에 말려 패배했지만, 당시 치욕스러운 역사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이와 함께 남한산성에는 독특한 방어시설인 1남옹성, 2남옹성, 3남옹성, 그리고 연주봉옹성과 장경사신지옹성을 포함해 모두 5개의 옹성이 설치돼 있다. 옹성은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은 이중의 성벽을 말한다. 성이 넓어 전체적으로 방어하기에 약점이 있는 곳에 이 같은 옹성을 쌓는다. 이밖에도 성곽 여기저기에는 성 밖과 옹성으로 연결되는 통로 구실을 하는 암문이 16개나 있어 성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하게 한다.

동문 옆 수구문 모습. 남한산성의 물이 나가는 곳으로 암문보다 규모가 더 크다.
동문 옆 수구문 모습. 남한산성의 물이 나가는 곳으로 암문보다 규모가 더 크다.
남한산성 서북쪽의 연주봉 옹성으로 연결되는 제5암문. 성 안쪽에서 좁고 긴 통로를 따라 등산객이 지나가고 있다.
남한산성 서북쪽의 연주봉 옹성으로 연결되는 제5암문. 성 안쪽에서 좁고 긴 통로를 따라 등산객이 지나가고 있다.
남한산성 본성과 외성인 봉암성을 연결하는 통로인 제12 암문과 주변 성곽. 본성에서 제3암문을 나오면 문 하나가 보이는데 바로 제12 암문이다.
남한산성 본성과 외성인 봉암성을 연결하는 통로인 제12 암문과 주변 성곽. 본성에서 제3암문을 나오면 문 하나가 보이는데 바로 제12 암문이다.
전승문이라 불리는 북문의 내부 전경. 다른 문과 달리 천장에 별다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전승문이라 불리는 북문의 내부 전경. 다른 문과 달리 천장에 별다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 산성과 함께한 역사적 유적



성 내부에는 역사적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임금이 한양도성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거쳐 했던 행궁 중 또 하나의 궁궐 역할을 했던 ‘남한산성행궁(南漢山城行宮)’을 비롯해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의 누각인 ‘수어장대(守禦將臺)’, 그리고 무기제작소의 사무를 보는 곳으로 추정되는 ‘침괘정(枕戈亭)’이 있다.

또한 인조 3년(1625년) 군사훈련을 위해 건립한 지휘소인 ‘연무관(演武館)’과 양반들이 풍류를 즐기던 ‘지수당(池水堂)’, 성벽을 쌓을 때 억울하게 죽었던 축성담당자였던 이회 장군을 위해 세웠다는 사당인 ‘청량당(淸凉堂)’이 산성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이밖에도 성에는 조선 시대 건립한 망월사, 장경사, 천주사, 개원사, 국청사 등 모두 10개의 사찰이 있다. 이들 사찰에는 전국의 승군들이 모여 지냈으며 성을 지키는 일을 맡았다. 또한, 사찰에는 군기와 화약을 보관하는 등 호국불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북문인 전승문. 조선시대 뱃길로 들어온 각종 물품 등을 등짐으로 옮겨 이곳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북문인 전승문. 조선시대 뱃길로 들어온 각종 물품 등을 등짐으로 옮겨 이곳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남한산성 5개의 장대 중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동장대와 옆으로 제12 암문이 보인다. 동장대는 인조2년(1624년) 설치됐는데 18세기 초 붕괴됐지만 군사적 실효성이 없어 다시 짓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한산성 5개의 장대 중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동장대와 옆으로 제12 암문이 보인다. 동장대는 인조2년(1624년) 설치됐는데 18세기 초 붕괴됐지만 군사적 실효성이 없어 다시 짓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문인 우익문에서 남쪽의 수어장대 쪽으로 이어진 성곽. 성곽길이 넓고 평탄한 모습이다.
서문인 우익문에서 남쪽의 수어장대 쪽으로 이어진 성곽. 성곽길이 넓고 평탄한 모습이다.
북서쪽에 위치한 연주봉옹성의 끝부분. 돌을 둥글게 쌓아 축조됐으며 포루가 보인다. 남한산성의 5개 옹성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북서쪽에 위치한 연주봉옹성의 끝부분. 돌을 둥글게 쌓아 축조됐으며 포루가 보인다. 남한산성의 5개 옹성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제3남옹성 동쪽에 위치한 제10 암문 모습.
제3남옹성 동쪽에 위치한 제10 암문 모습.
제3남옹성 동쪽에 위치한 제10 암문 모습.
제3남옹성 동쪽에 위치한 제10 암문 모습.
남한산성행궁의 전경. 작은 궁궐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남한산성행궁의 전경. 작은 궁궐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군사훈련을 위해 건립한 지휘소인 연무관. 연무관 앞에는 넓은 공터가 있어 병사를 훈련시켰지만 지금은 도로와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군사훈련을 위해 건립한 지휘소인 연무관. 연무관 앞에는 넓은 공터가 있어 병사를 훈련시켰지만 지금은 도로와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남문인 지화문의 야경.(왼쪽 위) 남한산성 4개 성문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모습이다.
남문인 지화문의 야경.(왼쪽 위) 남한산성 4개 성문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모습이다.
제4암문 옆에 위치한 제2군포터. 군포는 성을 지키기 위한 초소 건물이다. 남한산성에는 125개의 군포가 마련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제4암문 옆에 위치한 제2군포터. 군포는 성을 지키기 위한 초소 건물이다. 남한산성에는 125개의 군포가 마련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독특한 모습의 제2남옹성이 들꽃과 함께 어우러져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다.
독특한 모습의 제2남옹성이 들꽃과 함께 어우러져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다.

■ 포스팅 = 이경하 기자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