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산성, 웅장한 석벽에 삼국시대 병사들 기상 '가득'

입력 2021. 02. 03   13:35
업데이트 2021. 02. 0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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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문경 고모산성(故母山城)


경북 문경에 있는 고모산성은 높고 넓은 성벽을 갖춘 석성으로 지어진 천연의 요새이다. 삼국시대 신라의 성으로 군사방어용으로 지어진 이곳에 오르면 멀리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진남교반이 눈앞에 펼쳐져 옛 삼국시대 병사들의 기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임진왜란 때 성의 규모에 놀라 적이 공격을 주저했다는 일화와 6·25 전쟁 격전지로 치열했던 상처가 남아있는 곳이다.   편집 = 이경하 기자

남문지를 통과해 왼쪽의 언덕을 오르면 서문지 쪽으로 성벽이 길게 이어진다.
남문지를 통과해 왼쪽의 언덕을 오르면 서문지 쪽으로 성벽이 길게 이어진다.




■ 북쪽의 적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


고모산성은 고모산(姑母山) 산줄기를 따라 축조한 ‘포곡식’ 석축 산성으로 장방형인 본성은 길이가 1,270m에 달한다. 처음 고모산성이 축조된 것은 삼국시대 초기인 2세기 말경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북으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할미성’이라고도 불리는 이 성은 높이가 낮은 곳은 불과 1m, 높은 곳은 11m가 넘으며 성의 폭 또한 신라 시대의 독특한 축성형태를 보여주듯 4~7m로 매우 넓다.

현재 고모산성에는 동·서·남·북문지와 익성(翼城)인 석현성의 문루인 진남문, 그리고 서문지 쪽의 배수구, 동쪽의 암문1개, 최근 복원된 주막거리, 2007년 명승 제31호로 지정된 토끼비리 옛길이 남아있다.

남문지를 통과해 왼쪽의 언덕을 오르면 서문지 쪽으로 성벽이 길게 이어진다.
고모산성에서 가장 복원이 잘 되어있는 남문지 모습.
고모산성에서 가장 복원이 잘 되어있는 남문지 모습.
남문지와 서문지 사이의 성벽에 오르면 목책 너머로 멋진 경치의 진남교반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문지와 서문지 사이의 성벽에 오르면 목책 너머로 멋진 경치의 진남교반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문지 옆에 쌓여있는 투석용 몽돌무지. 손에 들기 적당한 크기의 돌로 삼국시대 산성전투의 투석전에 사용됐다.
남문지 옆에 쌓여있는 투석용 몽돌무지. 손에 들기 적당한 크기의 돌로 삼국시대 산성전투의 투석전에 사용됐다.




■ 고모산성의 4문지



고모산성을 일반인들이 가장 접하기 쉬운 곳은 산성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서문지이다. 서문지 바깥으로는 국도 및 강안과 인접하고 있다. 진남휴게소에서 산성으로 오르는 소로길에 자리 잡고 있는데 복원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고 지금은 수풀이 우거져 일부러 찾기 전에는 만나보기 쉽지 않은 상태이다. 지금은 남문지가 복원이 잘 되어 있어 이곳에 오르면 익성인 진남루와 함께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남문의 규모는 길이가 16m, 너비가 5~5, 8m로 성벽의 외면에서 바라볼 때 개구부는 凹자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사다리를 통해 통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곳에는 싸움할 때 던지기 위한 주먹 크기의 돌들을 쌓아놓은 투석용 몽돌무지가 발견됐는데 삼국시대 산성 전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투용 무기로서 인근의 영강 주변에서 채집한 돌로 투석전을 벌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문지에 올라 서문지 쪽으로 가다 보면 복원된 성벽 위로 목책이 보이는데 조선 시대 방어시설인 여장이 아닌 목책을 둔 것은 적의 화살을 막기도 할 뿐만 아니라 적이 쏜 화살이 나무에 박혀 이를 재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문지에서는 익성(翼城)인 진남문으로 활처럼 이어진 성벽을 따라 내려갈 수 있다. 석현성이라고도 하는 익성은 정확히 언제 축조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모산성과는 다른 축성형태를 보여 아마도 그 이후에 쌓은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현재 복원된 모습은 당시의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어 조선 시대의 다른 산성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동문지는 복원이 아직 안 된 상태이고 북문지는 흔적만 남아있어 옛 모습 그대로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동문지에서 한참을 가다보면 지대가 낮은 서문지로 이어지는 성벽이 나온다. 이곳까지만 복원이 되어 있고 조금 더 지나 서문지 쪽으로 아직 복원이 안돼 무너진 성벽이 눈에 들어온다.
동문지에서 한참을 가다보면 지대가 낮은 서문지로 이어지는 성벽이 나온다. 이곳까지만 복원이 되어 있고 조금 더 지나 서문지 쪽으로 아직 복원이 안돼 무너진 성벽이 눈에 들어온다.
진남휴게소에서 수풀을 헤쳐 올라가면 나오는 서문지. 이곳도 복원이 안됐지만 당시의 성문형태를 알 수 있는 귀중한 모습이다.
진남휴게소에서 수풀을 헤쳐 올라가면 나오는 서문지. 이곳도 복원이 안됐지만 당시의 성문형태를 알 수 있는 귀중한 모습이다.
남문지에서 멀리 진남문 쪽으로 익성이 활처럼 이어져 있다.
남문지에서 멀리 진남문 쪽으로 익성이 활처럼 이어져 있다.
서문지에 있는 2개의 수구 모습(성벽 아래 왼쪽과 오른쪽)
서문지에 있는 2개의 수구 모습(성벽 아래 왼쪽과 오른쪽)
남문지로 들어와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동문지가 나오는데 성의 규모를 보여 주듯 동문지에서 남문지 모습이 보인다. 아직 이곳도 복원이 안돼 무너진 성벽의 모습만 보인다.
남문지로 들어와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동문지가 나오는데 성의 규모를 보여 주듯 동문지에서 남문지 모습이 보인다. 아직 이곳도 복원이 안돼 무너진 성벽의 모습만 보인다.




■ 고군분과 토끼비리



고모산성 남쪽 지역에는 크고 작은 신라 고분 수십 기가 자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결과 금동제 귀걸이와 화살촉, 손칼 등 금속 유물과 굽다리 접시, 항아리 등 각종 유물이 나왔다. 이를 토대로 고분의 축조연대는 6세기경 신라가 문경지역에 진출한 이후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고모산성 주변에는 석현성 진남문에서 오정산과 영강으로 이어지는 산 경사면에 있는 ‘토끼비리’가 유명하다. 


고려 태조 왕건이 남쪽으로 진군하다 길이 없어져 난감해할 때 마침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 유래됐다고 전해 ‘토천잔도’라고도 불린다. 돌벼랑에 나 있는 길인만큼 좁고 험하지만, 그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영강과 절벽은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조망을 보여준다. 이 길을 지나면 고모산성의 성곽이 이어지는데 당시 고개를 넘느라 힘들었을 사람들의 심신을 달래주었던 진남문 뒤편의 주막거리도 복원,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익성인 석현성에서 바라본 고모산성 모습.
익성인 석현성에서 바라본 고모산성 모습.
진남문 앞 전경. 멀리 고모산성과 오른쪽 아래로 이어진 성벽을 따라 벼랑길이 이어진다.
진남문 앞 전경. 멀리 고모산성과 오른쪽 아래로 이어진 성벽을 따라 벼랑길이 이어진다.
진남문으로 나오면 오른쪽에 위치한 고군분 모습. 삼국시대의 각종 유물이 나왔다.
진남문으로 나오면 오른쪽에 위치한 고군분 모습. 삼국시대의 각종 유물이 나왔다.
돌벼랑을 따라 이어진 토끼비리.
돌벼랑을 따라 이어진 토끼비리.
복원된 주막거리 모습
복원된 주막거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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