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싸우며 주보급로 뚫고 관개수로 보수

입력 2021. 01. 22   16:45
업데이트 2021. 01. 2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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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상록수부대의 본격적인 임무 수행
 
430㎞ 길이 ‘ORANGE 도로’ 보수
20㎞ ‘RED 도로’ 사흘 만에 개통
원활한 군수지원·지역 교통 발전
지역 숙원사업 관개수로 토사 제거
5000ha 경작지 재조성 경제 활성화
 
소말리아 모가디슈 북부 주보급로(MSR) ‘ORANGE’의 평탄화 작업을 하고 있는 상록수부대원들.  사진 제공=장정훈 부대장
소말리아 모가디슈 북부 주보급로(MSR) ‘ORANGE’의 평탄화 작업을 하고 있는 상록수부대원들. 사진 제공=장정훈 부대장

상록수부대 공사 요도
상록수부대 공사 요도

소말리아 상록수부대의 가장 큰 임무는 도로 보수공사였다. 두 개의 주보급로(MSR)에 대한 건설·유지·보수였는데 하나는 발라드와 벨레트웬을 잇는 약 430㎞ 길이의 ‘ORANGE’였고, 다른 하나는 발라드와 아프고이를 연결하는 약 40㎞의 ‘RED’였다.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북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갈래였다. 상록수부대의 주둔지가 있는 발라드를 거쳐 조하르와 벨레트웬으로 이어지는 북부 도로가 하나, 그보다 서쪽으로 치우쳐 아프고이를 지나치는 북서 방향 도로가 다른 하나였다. 현지 유엔임무단으로서는 두 도로 모두 모가디슈 작전 수행에 꼭 필요했다.

상록수부대가 현지에 도착해 처음 공사를 시작한 도로는 ‘ORANGE’였다. 이 도로는 과거 이탈리아가 소말리아를 지배했을 때 건설된 이후 당시까지 약 50년 동안 보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당연히 도로 이용에 제약이 많았다. 상록수부대는 유엔임무단 사령부로부터 430㎞ 구간에 대한 보수 임무를 부여받아 1993년 9월 초순 공사에 착수했다.

당시 현장을 지휘한 상록수부대장 장정훈 중령(당시 계급)은 이 도로가 장차 소말리아 재건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구슬땀 흘렸다. 부대는 골재를 이용한 비포장도로 작업을 하고, 우천시에도 차량 통행이 가능하도록 평탄화 작업, 다짐 작업, 골재 살포, 배수로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기를 4개월, 조하르 이북 지역의 공사 계획이 취소됐다. 유엔임무단의 기능과 역할이 축소·조정됐기 때문이다. 주 보급로의 우선순위가 바뀌었고, 부대는 발라드-조하르의 60㎞ 구간 공사에 집중했다. 1994년 2월까지 진행된 공사에는 연인원 2700여 명의 병력과 1360대의 장비가 투입됐다.

“모가디슈 북방에서 작전 중인 다국적 부대들의 원활한 군수지원과 지역 교통을 발전시키는 효과를 만들었습니다. 지역주민들로부터 우호적인 믿음과 신뢰를 받았다는 점도 큰 소득이었지요.” 장 중령의 이야기다.

부대가 진행한 또 다른 도로 보수공사 구간은 아프고이와 발라드를 잇는 도로였다. ‘RED’라고 불린 이 주 보급로는 북부도로와 북서도로를 가로로 연결했는데, 무장 세력이 모가디슈 북쪽 지역을 장악하면서 이를 우회하는 도로가 긴급히 필요해 시작한 임무였다. 공사는 두 단계로 나눴다. 긴급 도로개통이 1단계, 이후 안정화 작업이 2단계였다. 공사에는 미군 공병대대도 참여했다. 총 40㎞의 도로를 상록수부대와 미 공병대대가 각 20㎞씩 맡았다. 긴급한 상황이었기에 장 중령과 부대원들은 속도를 냈다.

“1993년 9월 11일부터 13일까지 단 사흘 만에 도로를 개통시켰습니다.”

놀라운 결과였다. 도로가 개통되자 부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 이듬해 1월 10일까지 전천후 비포장도로로의 건설을 계속해 완료했다. 모가디슈 북방의 주 보급로로 활용된 두 도로는 유엔임무단 다국적 부대들의 작전 활동에 크게 기여했다. 지역주민들의 교통여건 제공에도 도움을 줬다.

상록수부대 임무 수행의 절정은 관개수로 공사였다. 부대의 대표적인 성과로 호평받을 만큼 주민들의 찬사를 받은 임무였다. 발라드 북방 지역에서 동쪽 슈벨리강에 이르는 약 18㎞ 구간의 수로 공사였는데, 1953년 축조된 이후 수로 내에 점차 토사가 쌓이며 결국 사용 불가 상태로 방치된 상태였다.

“사실 관개수로 공사는 지역주민들이 먼저 요청해 이뤄진 임무였습니다. 그들의 숙원사업이었지요.”

중요한 과업이었기에 장 중령은 지역 부족장들, 자치위원장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수로가 보수된다면 소말리아 주민들의 자립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부대는 공병 장비를 주둔지에서 매일 출동시키는 대신 현장에 임시 시설을 설치해 보관했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면서 이들 시설의 야간 방호를 지역주민과 경찰에 맡겼다. 함께 작업을 수행한다는 인식을 심어 주민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나아가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배려였다.

당시 부대가 지역사회와 나눈 토의에는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첫째, 공사는 한국군이 수행하지만, 소말리아인이 자긍심을 갖도록 주민이 경계를 지원한다. 둘째,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건설 장비 현장 배치 시 경찰·주민이 경계에 동참한다. 셋째, 야간경계를 위해 철조망, 숙영·조명시설은 한국군이 제공하나, 경계 임무는 소말리아인으로 편성한다. 넷째, 소말리아인에 의한 장비·부속 탈거 및 훼손 시 수로 공사를 즉각 중단한다.

주민들의 참여는 적극적이었다. 실제로 공사 기간 중 야간 무장강도 침투 기도 사건이 있었지만, 지역주민·경찰이 이들을 격퇴하고 부대의 장비를 보호했다. 우리 군과 지역주민이 함께 만든 진정한 평화유지 활동이었다. 공사는 하루 평균 23명의 병력과 7대의 장비가 동원돼 1993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약 4개월간 진행됐다. 관개수로 개통 이후 일대 5000ha의 경작지가 재조성됐다. 농작물 경작이 재개되며 지역경제가 활성화됐다. 장 중령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내전과 굶주림으로 떠났던 지역민들이 다시 돌아와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희망을 건설했다는 생각에 힘들었던 기억은 일순간 모두 사라졌습니다.”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고온의 날씨와 폭풍처럼 이는 사막의 모래바람도 장병들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희망의 땀방울이었다.

서현우 기자


서현우 기자 < lgiant6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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