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下), 아름다운 산세와 함께 서울 도심이 ‘한눈에’

입력 2021. 01. 21   08:30
업데이트 2021. 01. 2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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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화문’에서 ‘소의문 터’까지 



이번 한양도성은 숭례문에서 남소문터를 지나 흥인지문으로 이어지던 남쪽 지역에 이어 혜화문을 지나 북악산과 인왕산을 거쳐 소의문 터로 이어지는 북쪽 구간이다. 특히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한양도성에서 숙정문이 있는 북악산 지역은 나머지 문과 다르게 사람 출입이 그동안 거의 없던 산악지역일 뿐만 아니라 이른바 1·21 사태 이후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38년 동안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돼 왔다. 


불과 10여 년 전인 2006년부터 일반에 개방됐지만 아직도 탐방 시간을 정해놓고 출입을 제한하고 있으며 입산 시 신분증을 반드시 소지하고 신청서를 안내소에 제출해야만 한다. 사진촬영도 일부구간은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탐방 신청만 제대로 한다면 한양도성 순성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남쪽 지역과 또 다른 매력을 가진 북쪽 구간의 한양도성을 만나보자.

한양도성의 인왕산 곡성에 오르기 전 하얗게 눈 덮힌 성곽 아래로 남산을 비롯한 서울의 빌딩숲이 눈에 들어온다.
한양도성의 인왕산 곡성에 오르기 전 하얗게 눈 덮힌 성곽 아래로 남산을 비롯한 서울의 빌딩숲이 눈에 들어온다.




■ 전형적 조선시대 성문 모습 



이번 한양도성의 시작은 한양도성박물관에서부터다. 북쪽으로 순성길 이정표를 따라 1시간 10분 정도 걷다 보면 한양도성 4소문중 하나인 혜화문을 만날 수 있다. 문의 이름은 혜화문(惠化門)이지만 처음에는 홍화문(弘化門)이었다. 1483년(성종 14)에 새로 창건한 창경궁은 동문도 홍화라고 지어져 나중에 혼동을 피하기 위해 혜화로 고쳤다고 한다.

지금도 미아리 고개를 지나 의정부로 이어지는 길이 혜화문 바로 옆을 지나고 있어 당시에도 한양도성의 중요한 출입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혜화문은 일제강점기에 헐려 흔적조차 없어졌지만 이후 1994년 복원 공사를 통해 깔끔하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복원된 곳이 본래 위치는 아니고 10여m의 차이가 나는 곳에 세워져 외딴 성문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성문 천장에는 봉황 두 마리가 새겨져 있고 아치형 출입구에 누각을 올린 형태여서 전형적인 조선시대 성문 모습을 갖추고 있다.

■혜화문에서 나와 큰 길을 건너 낙산공원쪽으로 가는 길의 성곽(왼쪽) ■혜화동 로터리에서 미아리 고개 쪽으로 가기 전 길 옆에 위치한 혜화문(오른쪽)
■혜화문에서 나와 큰 길을 건너 낙산공원쪽으로 가는 길의 성곽(왼쪽) ■혜화동 로터리에서 미아리 고개 쪽으로 가기 전 길 옆에 위치한 혜화문(오른쪽)




■ 때 묻지 않은 아름다움 간직


혜화문에서 언덕길을 따라 한 시간 가량 올라가다 보면 북문인 숙정문에 다다른다. 주변에 출입을 담당하는 숙정문 안내소와 말바위 안내소가 있다. 오르막도 많은 구간이기 때문에 여유로이 순성을 하고 싶다면 와룡공원에서 숙정문을 지나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추천한다.

북쪽의 대문인 숙정문(肅靖門)은 사람 출입이 거의 없는 산악지역에 만들어져 성문으로서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4대문으로서의 격식을 갖추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이지만 나중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38년 동안 출입이 제한되었던 곳이라 숙정문을 물론 주변 산세가 깨끗하고 멋진 모습을 자랑한다.

한양도성의 북대문인 숙정문. 숙정문은 ‘엄숙하게 다스린다’라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사람 출입이 거의 없고 대부분 닫혀 있어 성문으로서의 역활을 못했다.
한양도성의 북대문인 숙정문. 숙정문은 ‘엄숙하게 다스린다’라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사람 출입이 거의 없고 대부분 닫혀 있어 성문으로서의 역활을 못했다.
낙산 공원을 병풍처럼 둘러 이어지고 있는 성곽 모습.
낙산 공원을 병풍처럼 둘러 이어지고 있는 성곽 모습.
멀리 왼쪽으로 인왕산 곡성이 보이고 성곽과 인왕산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멀리 왼쪽으로 인왕산 곡성이 보이고 성곽과 인왕산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와룡공원에서 혜화문 쪽으로 가는 길에 아이들이 성곽 옆에서 뛰어놀고 있다(왼쪽,오른쪽 아래) ■와룡공원에서 혜화문 쪽으로 가는 길에 성벽이 건물 담벼락으로 이용되고 있다(오른쪽)
■와룡공원에서 혜화문 쪽으로 가는 길에 아이들이 성곽 옆에서 뛰어놀고 있다(왼쪽,오른쪽 아래) ■와룡공원에서 혜화문 쪽으로 가는 길에 성벽이 건물 담벼락으로 이용되고 있다(오른쪽)
4소문 중 하나인 창의문. 바로 옆에 안내소가 있어 숙정문까지 갈 수 있는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다.
4소문 중 하나인 창의문. 바로 옆에 안내소가 있어 숙정문까지 갈 수 있는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다.




■ 멋진 풍경을 만나다 



숙정문에서 1시간 40분 정도 순성길을 따라 걷다 보면 창의문(彰義門)이 눈에 들어온다. 4소문 중 하나인 창의문은 돌로 쌓은 홍예 위에 정면 4칸, 측면 2칸 구조의 문루가 있다. 북대문인 숙정문이 항상 닫혀있어 북쪽으로 통행하는 사람들은 이 문을 거쳤다고 한다. 1968년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도 창의문 안내소가 있어 숙정문까지 갈 수 있는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다.

이후에는 인왕산 곡성을 만날 수 있는데 서울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한양도성 주변의 멋진 충경을 만나고 싶다면 꼭 추천하는 장소이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중 유일하게 터만 남아있는 대문이 있다. 바로 서쪽의 대문인 돈의문(敦義門)이다. 최초 돈의문은 1396(태조 5) 한양도성의 8개 성문과 함께 건설됐지만 일제강점기인 1915년 도로 확장공사를 위해 철거된 채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앞 정동사거리에 돈의문 터라는 표지만 남기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숭례문과 돈의문 사이에 위치해 서소문(西小門)이라고 불렸던 한양도성 4소문 중 하나인 소의문(昭義門)은 돈의문 터에 비해 더욱 초라하다. 비교적 커다란 표지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돈의문 터에 비해 소의문은 터임을 나타내는 표지석 조차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중앙일보 사옥 건너편 주차장 구석에 위치한 소의문 터 표지석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북악산 팔각정부근에서 숙정문 쪽으로 바라본 야경.
북악산 팔각정부근에서 숙정문 쪽으로 바라본 야경.
■중앙일보 사옥 건너편 길 옆 구석에 위치한 소의문 터 표지석. 태조 5년(1396)에 문을 세울 당시 소덕문이었으나 예종 때 소의문으로 고쳤고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왼쪽,오른쪽 위)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앞 정동 사거리에 있는 돈의문 터 표지(오른쪽 아래)
■중앙일보 사옥 건너편 길 옆 구석에 위치한 소의문 터 표지석. 태조 5년(1396)에 문을 세울 당시 소덕문이었으나 예종 때 소의문으로 고쳤고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왼쪽,오른쪽 위)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앞 정동 사거리에 있는 돈의문 터 표지(오른쪽 아래)
창의문에서 북악산 방향으로 오르는 성곽길 모습.
창의문에서 북악산 방향으로 오르는 성곽길 모습.



이경하 기자 < kyung2019@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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