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현 병영칼럼] 의 마지막에서 새로운 시작을 만나다

입력 2020. 12. 30   15:50
업데이트 2020. 12. 3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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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느덧 2020년 한 해의 끝자락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국군 장병 여러분과 글로 만날 마지막 시간이기도 합니다. 모든 헤어짐에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프로이트는 애도를 상실에 대한 반응으로 설명하지요. 애도의 시간을 잘 보낸다면 만남에 쏟았던 마음 에너지를 풀어놓을 적합한 대상을 새로이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오늘 이 글을 통해 여러분과의 마지막 만남을 제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만남의 마지막에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오늘 이야기는 정신과 의사 일을 해오면서, 아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제 삶의 메시지일 수 있습니다.

2015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된 직후에 저는 암 환자의 정신건강에 대해 공부하고자 1년 동안 수련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암 환자는 진단부터 치료, 재발, 생애 말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마음의 고난을 겪습니다. 이 중에서 적절한 도움을 드리기가 가장 어려운 분들은 말기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 환자들입니다. 그 이유는 이분들이 죽음이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떠남을 앞두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당시 근무하던 병원에 시범형 호스피스·완화병동이 마련돼 말기 암 환자들의 마음을 바라보고 작게나마 그분들의 마음의 평안을 도울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호스피스 병동 환자들의 평균 재원 기간은 3주입니다. 3주 후에는 세상과 이별을 하는 거지요. 삶의 끝자락에는 그 사람을 둘러싼 그 사람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존재만이 남습니다.

희극인 김지선 씨를 달리 보게 된 우연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호스피스 강연 준비를 위해 영상 자료를 살피는 중이었습니다. 김지선 씨가 어느 쇼 프로그램에 나와 호스피스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험을 한 이야기를 하는 영상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종이에 쓰고 조금씩 지워나가 보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가족만은 지우기 힘들더라는 눈물 어린 고백에 뒤이어, 이 과정을 모든 호스피스 환자들이 경험한다는 설명이 뒤따랐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어떤 분들은 힘겹게, 어떤 분들은 자연스럽게 그 시간을 보낸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소중한 존재와 이별을 하는 건 호스피스 환자들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과 작별을 하게 됩니다. 이런 마지막 때를 생각하니 제 인생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상당 부분 정리가 됐습니다.

제가 호스피스 환자들을 돕는다기보다 오히려 환자들로부터 생의 가르침을 받은 겁니다. 이때의 경험을 마음에 품고, 몇 년 전부터 버킷리스트를 기록해 지갑에 지니고 다닙니다. ‘인생 랩 하나 만들기’, ‘정신과 진료를 삶의 도구로 쉽게 이용할 문화 만들기’, ‘공동체의 가치에 대해 공부하고 알리기’ 등입니다. 이 중에서는 운 좋게도 이미 이룬 것도 있고 아직 이루어 갈 것들도 있지요.

저는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을 통해 만나게 됐던 삶의 마지막에서 새로운 시작을 만났습니다. 비록 어렴풋했지만 남은 인생의 과정을 어떤 쪽을 향해 가야겠다는 귀한 힌트를 얻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마지막 때가 있을 겁니다. 미소 지으며 이 세상과 작별할 그때를 생각하며 삶의 방향성을 다시금 점검하는 계기가 우리에게 있었으면 합니다. 어느덧 2020년의 끝날입니다. 마지막을 생각하기 참 좋은 때입니다. 올 한 해 특별히 고생 많으셨습니다. 곧 2021년, 신축년 새해가 시작됩니다. 2020년의 마지막 때에 여러분은 어떤 새로운 시작을 꿈꾸고 계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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