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규 병영칼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입력 2020. 12. 24   16:05
업데이트 2020. 12. 2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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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석 규 광고콘텐츠 컴퍼니 쉐어스팟 대표·가천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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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 좋아하는 걸로 치면 누구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입맛 없어 본 적이 없고, 육해공 어느 산물이든 가림도 없다. 다만, 맛의 강도 측면에서 맵고 짠 음식은 무서워하는 편이다. 어머니의 심심한 손맛에 커오며 길들여졌는데 아내마저 비슷한 손맛이라 매운 맛을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심심한 음식들 중에서는 유독 계절 상관없이 좋아하는 음식이 있는데 그건 바로 냉면이다.

북쪽이 고향이신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평양냉면이 좋았다. 처음 맛본 사람들은 이 밍밍한 걸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냐고 고개를 가로젓지만 담백한 육수의 그 은근한 중독성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면은 또 어떤가? 나는 절대 가위로 면을 자르지 않는데 이로 툭툭 끊어 먹는 그 식감이 좋아서다. 역시 질기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다. 냉면은 특유의 담백함이 오히려 물리지 않고 자꾸 생각나게 하는 명품 음식이다.

올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책은 40만 부가 팔린 『해빙(The Having)』이라고 한다.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돈 버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책 내용의 핵심은 단돈 1원이어도 ‘없음’이 아닌 ‘있음’에 집중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은 ‘편안함’이고,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바로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고. 그 간절함이 불안·걱정·두려움을 가져오고 좋은 흐름을 막기 때문에 ‘해빙(Having)’을 할 수 없게 만든다고.

자기계발서나 재테크 관련 책들은 일반적으로 명확한 목표 설정과 절실하고 치열한 실천들을 부와 성공의 기본공식으로 제시하는데 이 책은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세계 슈퍼리치인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기부를 예로 들며 ‘상생’까지 나아간다. 돈 버는 방법은 결국 없음이 아닌 ‘있음’에 집중하면서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의외로 심플한 내용이다.

맛없는 음식일수록 양념이 강하다. 맛 내기에 자신이 없을 경우 자꾸 양념을 쓰게 되기에 양념이 진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원재료 고유의 맛은 사라지고 양념 맛으로 범벅이 된 이상한 음식이 남게 된다. 그러고 나서도 맛을 내보겠다고 더 강한 양념을 쓰는 경우가 많다. 담백함은 사라져 버린 악순환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노승과 사미승이 함께 길을 가던 중 시냇물을 만났다. 물을 건너려는데 냇가에 예쁜 처자가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었다. 사미승은 애써 처자를 못 본 체 외면했는데 갑자기 노승이 처자를 번쩍 업어 시내 건너편에 내려놓는다. 길을 가며 놀란 사미승이 노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어쩌자고 여자에게 손을 대십니까? 더구나 업다니요?” 노승의 답은 이랬다. “이놈아, 나는 벌써 냇가에 내려놨는데, 너는 아직도 처자를 업고 있구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이다. 처음 생각과는 달리 틀어져 버린 여러 가지 것들이 마음을 힘들게 한다. 하긴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에게 힘든 한 해였다. 이젠 마음을 조금 쉬게 하자. 어렵겠지만 조금은 담백하게.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그러나/아주 섭섭지는 말고/좀 섭섭한 듯만 하게/이별이게/그러나/아주 영 이별은 말고/어디 내생에서라도/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연(蓮)꽃/만나러 가는/바람 아니라/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엊그제/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한두 철 전/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의 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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