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선희 병영칼럼] 마음 따뜻한 세상

입력 2020. 12. 22   16:57
업데이트 2020. 12. 2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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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선 희 
국방TV 작가
주 선 희 국방TV 작가


“선희야, 너희 집에 일주일만 재워줄 수 있을까?” 어느 날, 60대 중반의 작은외삼촌이 갑자기 전화해서 한 말이다. 너무 당황해서 무슨 일이냐고 여쭤봤고 외숙모한테 잘못한 일이 있어서 쫓겨나게 생겼다는 것이다. 너무 황당해서 “외삼촌 나이가 몇인데 그러시냐?”며 화를 냈는데, 알고 보니 외삼촌의 장난이었다. 친정엄마를 놀리려니 나까지 속여야 해서 그런 거였단다. 작은외삼촌은 간혹 짓궂은 장난을 치신다. 장애인임에도 늘 유머와 재미를 잃지 않고 밝게 사신다.

작은외삼촌이 처음부터 장애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2남3녀 중 막내인 작은외삼촌은 우등생이었고 유학까지 다녀오셨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어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유학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국내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귀국해 직장을 다니며 결혼도 하고 평범하게 사셨다. 하지만 당뇨 합병증으로 근육에 문제가 생기는 희귀병에 걸려 장애인이 되셨다. 식사는 포크로 겨우 하고 혼자 일어나지도 앉지도 못하고 걷는 것도 부축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국내 대기업에 계속 근무하며 해외 출장도 자주 다니고 퇴직 후엔 서울의 H대학에서 연구교수로 일하기도 했다. ‘해외 출장이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해외 나가면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한국에 있을 때보다 편하다”면서 “누구나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사회적 배려가 아쉽다”고 하셨다.

나에게 작은외삼촌이 더 애틋하고 정신적 지주가 되는 이유는 나에게도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나이 7살,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들은 임신했을 때부터 문제가 있었다. 임신 6개월째에 의사가 아이 뇌에 작은 문제가 있는데 경증이라면서 “장애아일 확률 반, 정상아일 확률 반”이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청천벽력이었다. 다행히 생후 7개월까지는 아무 문제 없이 자랐지만 갑자기 경기를 했고, 결국 돌 즈음 ‘뇌병변 1급’이라는 장애 진단을 받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화가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 돈 내고 치료를 받겠다는데도 병원이 턱없이 부족해 6개월~1년의 치료대기는 기본이고,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장애인택시도 한 번 타려면 길게는 한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면서 더욱 화가 났다. 한 구에 장애인특수학교가 겨우 1~2개뿐인데 학교당 초등 신입생 입학정원이 6~12명이었다. 일반 초등학교는 신입생이 많으면 학급 수를 늘리는데 장애인특수학교는 정원만큼만 받고 떨어지는 장애아들은 유급을 시키거나 일반초등학교 특수반으로 배치한다고 했다. 이런 부당함은 관련 뉴스가 나올 때에만 일반인들의 관심을 받을 뿐 금방 잊힌다.

상이군인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다. 임무 수행 중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안게 된 군인들에 대한 뉴스가 간혹 보도된다. 하지만 이 역시 사건 발생 당시에만 관심을 받을 뿐 똑같이 잊힌다.

한 번은 부대로 촬영을 갔는데, 공보 장교가 이런 말을 했다. “상대적으로 위험한 임무를 맡고 있는 장병들의 경우 보험 가입이 힘들고 비싸다”는 것이다. 보험사들이 잠정적으로 이들이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임무를 수행하는 장병들에게 사회제도가 너무 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도, 상이군인도 절대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소외된 이웃에게 관심을 갖자는 표어가 익숙한 연말연시다. 평소에도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365일, 마음 따뜻한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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