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훈 병영칼럼] “쓰레기를 쓰자”

입력 2020. 12. 21   16:58
업데이트 2020. 12. 2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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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 훈 
IT칼럼니스트
이 요 훈 IT칼럼니스트

 

디지털클록4(DigitalClock4)라는 윈도용 앱이 있습니다. 바탕화면에 반투명한 시계를 큼지막하게 띄워주는 앱입니다. 웹 서핑을 하다 보면 시간을 까먹는 일이 많아 항상 띄워놓고 씁니다. 시계 밑에 좋아하는 글을 적을 수도 있는데요. 제가 사용하는 화면엔 이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오늘도 쓰레기를 쓰자’. 올 한 해, 제 삶을 지켜준 주문입니다. 영화 ‘미쓰 홍당무’를 찍은 이경미 감독의 에세이집 『잘돼가? 무엇이든』에 적혀 있었죠. ‘쓰레기를 쓰겠어!/라고 결심하니 써지긴 써진다./매일 다짐해야겠다./쓰레기를 쓰겠어!’라고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올 한 해 많이 혼란스럽게 살았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바뀌어 버린 계획과 취소된 일정들 속에, 막연하게 올라오는 불안감을 다독이고, 사는 법을 새로 배우며 살아가야 했거든요. 당연하던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가까웠던 사람들이 멀어져 갔습니다. 혹시라도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일하는 곳에 피해가 갈까 봐 매일 조심하며 삽니다. 뉴스를 들으며 속으로 화를 낸 때도 많습니다. 답답하니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요.

그때 이 말을 만났습니다. 쓰레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으니 어떻게든 써지긴 한다는 말을. 한번 해봤습니다. 잘 쓰겠다는 마음을 비우고 그냥 글쓰기 프로그램을 열고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으니, 정말 써지긴 써집니다. 세계 명작은 아니지만 어쨌든 글 하나를 썼습니다. 이 말이 정말 마법이더군요. ‘그따위로 쓸 바엔 아무것도 안 쓰는 게 나아’라는 말과 ‘그래도 어떻게든 쓰는 게 좋아’의 사이에서 ‘그래도 어떻게든’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쓰레기’를 쓰겠어!가 아니라, 쓰레기를 ‘쓰겠어!’라는 거죠.

세계는 지금 안전성을 중심으로, 네트워크 사회로 재편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올해 많이 얘기된 한국판 뉴딜도 우리나라를 먼저 디지털 전환 시켜서 세계에서 앞서 나가겠다는 계획입니다. 변화 폭이 생각보다 커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다들 궁금해합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던 일을 더 잘하자고. 더 잘해야 길이 보이지 다른 길이 없을까 곁눈질하는 건 소용없다고.

그걸 아는데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이 가진 허들은 생각보다 높아서, 특히 앞날이 불안할 때면 행동을 먼저 멈춥니다. 게으르기도 하죠. 우리 뇌는 원래 가장 편한 길만 골라서 가려고 하거든요. ‘이렇게 하면 좋습니다’ 하고 말해도 경험상 그걸 실행하는 사람은 100명 가운데 한 명, 1년 넘게 계속하는 사람은 또 100명 가운데 한 명 정도입니다. 저라고 다르지 않은데 이런 말을 만나서 정말 다행입니다. 갈까 말까 고민할 때, 가라고 등 떠밀어 주는 말을.

자, 여러분도 오늘, 같이 쓰레기를 써보시지 않겠습니까? 쓰레기면 또 어때요. 그걸 1년 넘게 한다면 당신은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운동도 좋고 공부해도 좋고 일기를 쓰거나 사색을 해봐도 괜찮죠. 뭐든 자꾸 되풀이하면 극적인 변화가 생깁니다. 오래전에 톨스토이가 ‘작은 변화가 생길 때 진짜 삶을 살게 된다(True life is lived when tiny changes occur)’라고 말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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