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라울 뒤피가 바로 그 기쁨과 쾌락이다
프랑스 화가 라울 뒤피,
‘바다와 그림’ ‘음악과 그림’ 결합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 탄생시켜
사람들은 무언가를 늘 구분 짓지만
뒤피는 공간의 결합 통해 ‘쾌락’ 선사
미국의 유명작가 거트루드 스타인 (Gertrude Stein)은 이런 말을 했다. “누구나 기쁨, 쾌락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삶에서 기쁨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그다음이 재미있다. “라울 뒤피가 바로 그 기쁨과 쾌락이다.”
여기서 라울 뒤피(Raoul Dufy)는 프랑스 화가이고, 거트루드 스타인은 라울 뒤피의 작품을 통틀어 말한 것이다. 그림이 느낌을 전달해 준다는 것은 알겠는데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지, 어떻게 기쁨만 줄까? 사실이라면 굉장한 정보겠네. 우울할 때면 라울 뒤피의 작품을 보면 될 테니까.
오늘 여러분과 확인해 보자. 그런데 잠깐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라울 뒤피도 이런 말을 했으니까. “나의 눈은 모든 못생긴 것을 지우도록 만들어져 있다(My eyes were made to erase all that is ugly).”
라울 뒤피가 그린 ‘르아브르의 바다(La mer au Havre)’를 보자. 눈이 편안하다. 그림이 복잡하지 않게 수평 구도로 그려져 있고 전체 푸른색 톤이 부드러워서 그렇다. 제일 위는 하늘이다. 구름이 하나도 없지만 그렇다고 눈부실 정도의 파란 날은 아니다. 그 아래는 먼바다다. 파란색이 하늘보다 짙어졌다. 위에는 증기선이 세 척 떠 있다. 왼쪽에 두 척, 가운데 한 척이다. 그것들은 저마다 다른 연기를 뿜고 있는데 하늘 속으로 흩어진다.
그다음 가까운 바다에는 돛단배 네 척이 보인다. 멀어서 모양은 알 수 없지만, 돛의 색들은 다르다. 유람선이나 낚싯배일 텐데 한가로워 보인다. 라울 뒤피는 육지에서 가까운 바다에는 규칙적인 물결을 그려 놓았는데 모양이 재미있다. 갈매기들의 연결이다.
그림 제일 아래에는 빨간 난간이 있고, 그 앞의 사람들은 바다를 본다. 제일 왼편에는 대여섯 사람들이 무리 지어 있는데, 라울 뒤피는 컬러를 입히지 않았다.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관심을 보인 것은 흰 드레스를 입고 파란 양산을 든 여인이다. 여인 오른편 두 발걸음쯤 옆에는 정장 모자를 쓴 신사가 있는데 흰 드레스 여인을 의식하는 걸까? 그 남자 오른편에는 허리를 반쯤 굽히며 돛단배를 유심히 보는 남자가 있고, 그 오른편에는 노부부가 바다를 회상한다.
라울 뒤피는 덤덤하게 어릴 적부터 보던 바다를 화폭에 옮겼다. 자신의 말처럼 이 그림에는 못생긴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예쁜 것을 강조해 그리지도 않았다. 라울 뒤피의 말이 생각난다. “혼란스러울 때 할 일은 자연으로 돌아간 다음 심장에서 가까운 주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라울 뒤피의 심장이 바라본 바다 풍경일 것이다. 누구나 복잡할 땐 바다가 보고 싶어지니까.
감상할 두 번째 작품은 ‘바이올린이 있는 정물(Nature morte au violon)’이다. 기쁨, 쾌락이 주제라면 음악이 빠질 수 없다. 기쁜 날엔 기분이 좋아 음악을 듣고, 슬픈 날엔 우울하기 싫어 음악을 듣는다. 라울 뒤피도 음악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그의 음악 사랑은 좀 구체적인데 그림과 음악을 결합하려는 시도이다. 이 작품의 부제는 ‘바흐 예찬’이다. 바흐 작품을 들으며 그린 것이다. 그림이라기보다는 빨강 붓과 파랑 붓의 율동 같다. 붓들이 음률에 맞춰 춤을 추듯 캔버스 속 색들은 이리저리 움직인다. 보통 작품은 외곽을 그려 놓은 후 색으로 채우는 방식인데 이것은 형태와 색들이 따로따로 논다. 마치 올바로 그려 놓은 그림이었는데 슬그머니 음악이 와서 흔들어 놓은 것처럼….
자세히 보면 정물화다. 두 벽이 보이는 방안에는 네 가지가 있다. 왼편 벽에는 피아노와 악보와 바이올린이 있고, 오른쪽 벽면에는 꽃 정물화가 걸려 있다. 어두운 방 안이다. 갑자기 하얀 빛 조각이 들어 온다. 그 빛은 피아노 위에 있는 악보와 바이올린을 비춘다. 바이올린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자 소리가 나온다. 음악이다. 점점 힘차지는 음악은 방안을 진동시키고, 그 진동 에너지는 빨간빛을 만들고, 아라베스크 무늬들은 그 앞으로 튕겨 나간다.
오른편 벽을 보자. 처음부터 지켜보던 정물화도 슬슬 리듬을 탄다. 그러더니 파란빛을 방출하기 시작한다. 여러분은 음악이 들립니까? 들리지는 않더라도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까? 라울 뒤피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까지 움직이려 한다. 자신의 기쁜 주파수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라울 뒤피는 1905년 앙데팡당전에 전시된 마티스의 작품 ‘호사, 정적, 그리고 쾌락(Luxe, Calme et Volupt?)’을 보고 충격을 받은 후 작품 방향을 완전히 바꿨다고 한다. 그 말은 눈으로 본 대상을 재현하는 일에 관심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또한 컬러를 느낌에 따라 맘껏 사용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품에는 강한 야수파의 느낌이 나지만 거기에 덧붙였다.
음악을 그림에 넣어보자. 그리고 기쁨을 그림에 넣어보자. 늘 기쁨을 주고자 했던 르누아르가 생각나고, 음악을 그리고자 했던 칸딘스키가 생각난다. 라울 뒤피는 그 모든 것을 결합해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마지막으로 감상할 것은 ‘열린 창문이 있는 방(Interior with open window)’이다. 눈이 시릴 정도의 원색들이다. 대상도 어지러울 정도로 많다. 차분하게 봐야 그나마 보인다. 방 안이다. 한가운데는 파란 테이블이 있고, 그 위에 파란 꽃병이 있다. 꽃병 뒤에는 커다란 전신거울이 있는데, 반대편 실내 풍경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전신거울 양옆에는 세로로 긴 창문이 둘 있다. 녹색 난간이 있는 왼편 창 멀리는 하늘, 바다, 해변 집들이 보인다. 오른편 창문 밖에는 야자수가 보이고, 그 위에는 도시가 있다.
전형적인 창밖 풍경이 보이는 정물화 같지만, 조금 특이하다. 실내와 창밖 풍경에 비치는 빛의 상태는 엄연히 다를 텐데 이 작품에는 안이나 밖이나 똑같다. 그래서 실내외가 구분되지 않는다. 하늘색이 테이블 색이고, 바다색이 꽃병 색과 같다. 이유가 있다. 라울 뒤피는 이 작품을 통해 바다 풍경과 실내를 결합하려고 했다. 자신에게는 같은 공간으로 느껴졌으니까.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은 무엇을 구분 짓지만, 라울 뒤피는 결합한다. 그것이 라울 뒤피의 작품 전체에 쾌락을 불어넣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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