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우 한주를 열며] 행성 이름 이야기

입력 2020. 10. 23   16:32
업데이트 2020. 10. 2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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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 우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한 인 우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요즘 밤하늘에 화성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화성이 태양의 정 반대쪽에 위치해 밤새도록 하늘에서 화성을 볼 수 있고, 또 몇십 년 만에 화성이 지구에 최근접해 그 밝기가 더 휘황하다. 동양에서 화성은 그 빛깔이 붉어 오행 중 불의 기운을 띄고 있는 듯하다는 의미로 화성이라 했다. 서양에서 화성 마스(Mars)는 전쟁의 신이다. 이 글에서는 화성을 비롯한 태양계 행성의 동서양 이름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알아보기로 한다.

동양에서 수금화목토 다섯 행성은 원래 진성(辰星), 태백성(太白星), 형혹성(熒惑星), 세성(歲星), 진성(鎭星)이라 불렸다. 이는 각 행성의 특성과 관련이 있는데, 금성은 오행성 중 가장 밝기 때문에 태백성, 화성은 밝기가 잘 변하고 행적이 일정하지 않아 형혹성이라 하였다. 목성은 공전 주기가 약 12년으로 고대 동양 천문설에서 12차(구역)로 나눈 하늘을 일 년에 한 구역씩 통과하기에 1년을 뜻하는 세(歲)자를 붙여 세성이라 했다.

음양오행설은 동양 전래의 자연철학으로 모든 자연현상과 사물을 음양 그리고 오행이라는 성질과 관련시키는 자연관이다. 오행이 적용된 예로는 사람의 장기, 색깔, 방위, 감정, 맛 등을 들 수 있다. 음양오행설이 확립됨에 따라 천체에도 이를 적용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천체인 해와 달에 음과 양을 적용해 태양과 태음이 됐다. 그리고 다섯 행성에는 오행을 적용해 앞에 설명한 대로 새로운 이름이 부여됐다. 오행을 어떻게 오성에 대응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짐작을 해보자. 먼저 화성은 그 붉은 빛깔, 금성은 가장 찬란한 밝기에 따른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추정할 수 있다. 수성과 토성은 공전 주기에 따라 가장 짧은 수성에 유연한 수를, 가장 긴 토성에 안정된 토를 부여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서양(그리스, 로마)에서 하늘은 신화에 나오는 온갖 신이나 정령 그리고 동물의 무대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리온, 카시오페이아 등의 별자리에 관련된 신화가 대표적이다. 이제 그리스 로마에서 오행성에 어떻게 이름을 지었는지 알아보자. 먼저 주피터(목성)는 신들의 왕이다. 목성은 모든 행성 중에서 그야말로 거인급이다. 질량으로 보면 지구의 300배가 넘고 행성 중 두 번째로 큰 토성의 3배가 넘는다. 그리스인들이 목성의 질량을 알았을 리는 없지만 밝기가 금성 다음으로 밝고 공전 주기가 긴 목성을 신들의 왕으로 생각한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새턴(토성)은 그리스 신 계보에서 주피터의 아버지다. 공전 주기가 가장 긴 토성을 가장 오래된 신 새턴으로 생각한 것 같다. 마스(화성)는 전쟁의 신이다. 붉은빛으로 불길한 느낌을 주는 화성을 전쟁의 신으로 생각한 것이 그럴듯하다. 비너스(금성)는 미와 사랑의 여신이다. 오행성 중 가장 밝고 찬란한 금성은 단연 비너스가 어울린다. 마지막으로 머큐리(수성)는 신들의 전령이다. 공전 주기가 가장 짧아 빠르게 움직이는 수성을 전령으로 삼은 것이다.

동양에서는 음양오행설에 입각해 오행성 이름을 정했고, 서양에서는 행성을 신화에 나오는 신과 일치시켰다. 동양의 하늘은 음양오행설의 원리가 적용되는 이지적인 세계이고 서양의 하늘은 신들의 갖가지 스토리로 떠들썩한 신화의 세계다. 그런데 행성의 운동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우주론이 이지적인 동양의 하늘이 아닌 신화의 서양 하늘에서 구축된 것은 좀 아이러니가 아닌가 한다. 그렇지만 역동적인 신화의 하늘에서 역학적인 우주론이 태동한 것도 자연스럽다 할 수 있겠다. 신화와 과학 아니 세상만사가 모두 인간 상상력의 소산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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