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지 원 기고] 반도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입력 2020. 10. 22   16:43
업데이트 2020. 10. 2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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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지 원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양 지 원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미국은 지난 8월 화웨이 반도체 수급에 치명적인 추가 제재안을 발표했다. 패권경쟁에서 미국은 절대 우위에 있는 반도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시작되면서부터 경제 뉴스와 친숙했던 반도체가 정치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국가 간 갈등에 반도체가 등장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소 냉전이 절정이던 1980년대 후반, 도시바의 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COCOM) 규칙 위반과 일본 반도체의 미국 시장 잠식으로 미·일 두 나라는 불편한 관계가 됐다. 결국 미·일 반도체 협정과 플라자 합의가 이뤄졌고, 이후 일본은 반도체 몰락을 시작으로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하게 됐다.

가까운 과거 사례로는 지난 2019년 역사 문제로 촉발된 한·일 무역갈등이 있다. 이때 일본은 반도체 소재 수출을 제한하며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타격을 입히고자 했다. 이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영향력 확대와 나아가 한·일 갈등에서 우위에 서고자 반도체를 정치·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한 것이다.

반도체 업체 간 갈등에 국가가 관여한 사례도 있다. 2007년부터 약 5년간 이어졌던 메모리 반도체 가격경쟁(치킨게임)으로 독일·일본·대만의 세계적 반도체 기업들은 파산하거나 인수·합병됐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법을 바꾸면서까지 공적자금 투입을 했지만, 일본 유일의 디램(DRAM) 업체 엘피다는 결국 파산신청을 했다. 대만 정부 또한 자국 업체들을 구제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선진국들이 오래전부터 반도체에 민감하고, 사활을 거는 이유는 반도체가 군사력을 결정하는 무기체계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991년 걸프전에서 화려하게 데뷔했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과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당시 일본 반도체의 첨단 기술력이 없었다면 보지 못했을 무기체계였다. 또한 최첨단 전투기 F-35의 핵심인 AESA 레이더는 각 모듈별로 반도체가 탑재돼 있다. 반도체의 성능과 신뢰성이 레이더 및 전투기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 외에도 반도체가 무기체계에 적용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전자기술 발전에 따라 반도체 개발 속도가 새로운 전쟁 형태와 무기체계 출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처럼 반도체 기술력은 경제적 이득을 넘어 군사력·외교력을 포함한 국가 차원의 안보 역량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반도체 선진국 대열에 있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회사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이번 미·중 갈등으로 반사이익을 얻은 한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섣부른 낙관론에 취하지 말아야 한다.

작금의 혼란스러운 세계정세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으려면 우리 반도체 기술력의 강점을 살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어느 누구에게나 중요한 존재가 돼야 할 것이다. 반도체의 국가안보적 중요성을 되새기고,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를 통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이 우리가 반도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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