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뒤엎는 온갖 음모론 소셜미디어 발달이 한몫

입력 2020. 09. 23   16:47
업데이트 2020. 09. 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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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上)-5G 기술로 코로나 퍼뜨린다?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음모론
첨단 과학 발달한 시대에도 유행
5G 망으로 코로나 전파된다…
남미·유럽 등서 집단적으로 형성 

 
중국이 5G 수요 늘리기 위해
코로나바이러스 개발 주장
기후변화 美 공업 고사 시도 해석도 

 


필자가 군복무하던 시절은 개인용 컴퓨터가 막 보급되기 시작한 때였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에는 지금은 골동품으로 여겨지는 수동 타자기를 사용했다. 각급 부대로 보내지는 행정문서는 타자기로 등사지에 작성한 다음 롤러 등사기에 잉크를 묻혀 복사했다. 그 시절 보급되기 시작한 컴퓨터는 첨단 문명이었다. 문서를 작성하다 오타를 비롯해 실수를 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작성할 필요 없이 해당 글자만 수정하면 그만이었다. 손에 잉크를 묻히는 수고 없이 도트프린터가 동일한 문서를 깔끔하게 인쇄해줬다. 타자기 대신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업무의 효율성은 엄청나게 높아졌다. 그래서 ‘컴맹’이었던 후임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배우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그는 타자기를 고집했다. 아니 컴퓨터를 거부했다. 이유인즉 컴퓨터를 사용하다 잘못하면 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우려하는 바가 어깨 결림과 같은 VDT증후군(Visual Display Terminal Syndrome)을 말하는 줄 알았더니 엉뚱하게도 컴퓨터 바이러스였다. 그는 컴퓨터가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킨다고 믿었다. 그 말에 모두 박장대소를 했고, 오해임을 깨달은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능숙한 컴퓨터 사용자가 되었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PC 통신도 없고, 마우스 없이 자판만 사용하고, 윈도가 아니라 도스로 진입해서 컴퓨터를 사용하던 시절의 일화다.

아주 많은 세월이 지나지는 않았지만, 오늘날 컴퓨터 기술은 당시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이제 누구나 슈퍼컴퓨터 한 대씩은 손에 들고 다닌다. 모바일 인터넷은 이제 4G에서 5G로 넘어가고 있고, 영화 1편 다운받는 데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5G 기술을 기반으로 가상현실기술이나 사물인터넷이 상용화된다는 예측도 있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컴퓨터가 바이러스를 전파한다고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있다면 믿겠는가? 컴퓨터 바이러스가 아니라 코로나바이러스 말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5G 무선통신망으로 전파된다는 믿음을 한두 사람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는가? 


올해 들어 미주대륙과 유럽에서는 5G 무선통신 관련 다양한 허위정보와 음모론이 유행한다. 5G 무선통신 전파가 면역체계를 약화시킨다는 주장은 그나마 낫다. 2G 기반의 휴대폰이 등장했을 때 이 기술이 암을 유발한다는 설도 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세기 초 라디오가 발명됐을 때 라디오 전파가 건강에 해롭다는 설도 유행했다. 그러나 5G 기술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전파한다는 주장은 굳이 과학을 빌리지 않고 상식선에서 생각하더라도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음모론이다. 그러나 이를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미 볼리비아에는 아직 5G 무선통신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5G 음모론을 믿는 일부 볼리비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5G 무선중계기라고 믿는 시설에 불을 질렀다.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에서도 비슷한 방화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코로나19 증상이 다량의 전자기파에 노출됐을 때 나타나는 증상과 유사하다거나 아프리카에서 코로나19가 유행하지 않는 까닭은 5G 무선중계국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빌 게이츠와 관련된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도 많다. 빌 게이츠는 몇 년 전부터 감염병 대유행을 경고했고, 올해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백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음모론자들은 빌 게이츠의 목적이 백신 접종을 하면서 5G 기술로 작동하는 마이크로칩을 심어 사람들의 정신을 통제하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일루미나티 같은 비밀결사조직이 세계 경제와 정치를 통제하기 위한 목표로 1990년대 ‘세계화’를 추진했으며, 세계화의 전도사 빌 게이츠나 조지 소로스는 일루미나티의 일원이라고 주장한다.

중국과 관련된 음모론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중국 우한에서 발원했다. 그리고 5G 기술이 시험된 장소도 우한이다(사실 우한은 여러 5G 시험 장소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사실을 조합하여 다음과 같은 음모론이 만들어진다. 중국 기업이 5G 기술과 장비를 세계 시장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무선통신에 대한 수요를 늘릴 필요가 있다. 무선통신 수요를 늘리기 위해서는 재택근무, 화상회의, 원격교육처럼 대규모 온라인 트래픽이 발생해야 한다. 대규모 온라인 트래픽은 사람들의 오프라인 접촉을 차단해야 발생하므로, 오프라인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코로나바이러스를 개발했다.

5G 이외에도 기후변화에 대한 음모론도 유행한다. 기후변화는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 소비에 따라 탄소배출량이 늘어났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과학적 정설이다. 여기서 기후변화는 인간이 일으키고 있는 현상이지 자연발생적 현상은 아니라는 시사점이 도출된다. 그런데 음모론자들은 기후변화가 실제라면 그것은 태양의 에너지 방출량 증가나 지구의 자전축 변화로 인해 발생하며 인간이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말한다. 음모론자들은 인간이 기후변화를 일으킨다는 주장은 곧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의 공업을 죽이기 위한 시도라고 해석한다. 최근 미국 서부에서 번지고 있는 심각한 산불 사태에 대해서도 음모론자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이 심각해졌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기후변화론의 지지자들이 일부러 방화를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인근 지역에서 방화범이 체포되기는 했지만, 방화범이 기후변화론의 지지자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 또 산불의 시작을 방화범의 소행 탓임을 인정하더라도, 기후변화가 재가 서부에서 동부까지 4000㎞를 날아갈 정도로 산불을 걷잡을 수 없이 크게 키웠다는 점을 반박하기는 어렵다.

음모론은 인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이다. 고대에는 과학이 발달하지 않아서 신화, 미신, 음모론에 기대어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첨단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음모론은 여전히 유행하고 있다. 오히려 과학적 사실, 전문가의 분석, 일반적 상식을 뒤엎는 음모론이 더 쉽고 광범위하게 유포된다. 여기에는 미디어, 특히 소셜미디어의 발달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 한국방송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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