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겸 종교와삶] 힐링 을 위한 필링

입력 2020. 09. 15   16:48
업데이트 2020. 09. 1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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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겸 해병대교육훈련단 군종장교·대위·신부
김훈겸 해병대교육훈련단 군종장교·대위·신부

‘신앙생활을 왜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답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신앙생활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절대자에게 기도하며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과연 편안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분명 신앙생활은 우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를 가져오지만 때때로 그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불편함과 같은 고통이 더해지기도 한다.

먼저 상처라는 것을 살펴보자.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는 몸과 마음의 상처 중 어떤 상처는 그냥 내버려 두면 알아서 낫는다. 때때로 작은 흉터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별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아문다. 또 어떤 상처들은 반드시 적절한 약을 발라야 낫는다. 그런데 어떤 상처들은 긁어내야만 낫는다. 의학적 용어로 긁어내고 벗겨내는 것을 ‘필링(Peeling)’이라고 한다.

언젠가 무릎에 깊은 상처를 입어서 나름대로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며 잘 관리한다 싶었는데 한 달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모든 수를 다 동원했음에도 낫지 않아 결국 외과로 갔다. 의사는 겸자 가위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조금 아플 겁니다.” 그러면서 상처 주변에 형성된 딱지들을 망설임 없이 뜯어냈다. 고통을 견디다 이제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조금 더 아플 겁니다” 하며 알코올에 적신 거즈로 상처를 벅벅 닦아냈다.

상처에 알코올만 닿아도 쓰리거늘, 힘주어 닦아내니 그 고통은 생각보다 컸다. 의사는 내게 상처에 딱지가 지면 새살이 올라오는 것을 방해해서 상처가 낫지 못하고 곪는다고 설명했다.

때때로 마음의 상처도 이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거짓말로 생긴 잘못된 상황이라는 딱지들을 벗겨내지 않으면, 상처가 낫기는커녕 더 심한 상처를 남긴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양심을 따라 살고, 각 종교의 교리 안에서 진리와 정의, 사랑과 자비를 따르고 실천하며, 선과 악을 바로 보며 살아가는 것. 그러면서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죄를 바라볼 때도 상당히 그 범위가 넓다. 그래서인지 얄궂게도 신앙에 따라 살아가면 피곤하다. 때때로 손해를 보기도 하고 더 큰 상처를 받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다.

신앙이 요구하는 양심과 정의는 처음엔 반드시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겪어내며 우리가 가진 잘못된 습관과 생각들을 벗겨낼 때 분명 이전과는 다른 기쁨과 평화로움이 마음속에 찾아온다. 이전에 내가 받고 있던 상처들도 그제야 아물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앙생활은 힐링(Healing)을 위한 필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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