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종교와삶] 주인의 점심<點心>

입력 2020. 08. 25   15:48
업데이트 2020. 08. 2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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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육군7군단 군종부·법사·중령
최훈 육군7군단 군종부·법사·중령


한자를 조금이라도 공부하신 분들은 정오 즈음 식사인 ‘점심’의 의미가 ‘마음에 점을 찍다(點心)’임을 아실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이 ‘점심’이라는 단어가 덕산 선감 스님 일화에도 나오며, 그 일화에서는 점심이 “어느 마음에 점을 찍겠느냐”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 단어를 여러 의미로 사용할 수 있으나, 저는 마음에 점을 찍기 위해서는 그 스스로가 점을 찍어야 할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 가능한 이치라 생각합니다. 마음이 제 것이 되어야지 남의 것이 되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당연히 내 것이라고 여기지만 생각보다 마음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마음은 바깥으로 돌아 상대방을 보고, 또는 외부환경을 살피며 그쪽으로 쫓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비교하고 그 속에서 우월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당기려고도 밀쳐내려고도 합니다. 주인은 그럴 생각이 없는데 마음은 온갖 작용을 하며 스스로 잡념과 고통을 만들어 냅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스스로 열등의식을 심고 자기는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자기규정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 마음에 점을 찍어야 할까요?

사실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내 마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과 감정을 살피기만 해도 마음은 곧장 내 안으로 달려 들어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들어온 마음의 주인이 붓만 들면 점이 찍히죠.

내 안으로 마음을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외부의 상태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상태로 외부의 사람과 환경을 바꾸려고 해봐야 안 됩니다. 외부에 아무리 점을 찍으려 해도 안 됩니다.

사람은 각자 차이가 있고, 그 쓰임새가 다 다릅니다. 제가 스님이라고 해서 병원에 있는 의사에게 “어찌 자네는 의사가 되었는가? 장부라면 모름지기 스님이 되어야지!”라고 한다면 의사는 저를 어떻게 바라보겠습니까? 분명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볼 겁니다. 스님은 스님대로 군인은 군인대로 의사는 의사대로 살아가는 것이 제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꿀벌은 꽃에서 꿀을 따는 것이 천직이고, 고양이는 쥐를 잡는 것이 천직입니다. 지상의 모든 생명체에게는 각자 그에게 적합한 일이 부여돼 있다는 게 천직 의식입니다. 자기 일에 소명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에 점을 찍기 전에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나(내면)를 사랑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보배 같은 주인은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원효스님의 법문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옷을 짓는 데는 작은 바늘이 필요한 것이니 비록 기다란 창이 있다고 해도 소용이 없고, 비를 피할 때는 작은 우산 하나면 충분한 것이니 하늘이 드넓다 하여 따로 큰 것을 구하는 수고가 필요 없다. 그러므로 작고 하찮다 하여 가볍게 여기지 말지니, 그 타고난 바와 생김에 따라 모두가 다 값진 보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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