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섭 한 주를 열며] ‘성실 실패’

입력 2020. 02. 21   16:42
업데이트 2020. 02. 2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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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종 섭 
홍익대학교 초빙교수
최 종 섭 홍익대학교 초빙교수

 
두 주간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집 안에서 지냈다. 출장차 중국에 다녀왔지만, 폐 끼치지 말라는 주위의 조언을 따랐다. 중국 충칭에 가던 날 국내에서 세 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출국 비행기는 텅텅 비었다. 500만 명 정도가 모여 사는 충칭 도심 지역 거리에는 차와 사람 왕래가 드물었다. 나흘 머무는 동안 꼼짝 않고 실내에서 지내다 왔다. 그랬어도 중국에 다녀온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매우 따가웠다.

지난해 12월 31일 코로나19 첫 보도가 나왔다.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나왔고, 아직도 코로나19는 진행 중인 위협이다.

요즘 TV에 노란 점퍼를 입은 그녀가 나타나면 시민들은 신뢰의 눈으로 바라본다. 질병관리본부(질본) 정은경 본부장 이야기다. 정 본부장은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하며 불안한 시청자를 안심시킨다. 정 본부장은 의사 출신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국장급인 질본 긴급상황센터장으로 상황을 지휘하고 언론 브리핑을 했다. 상황 종료 후 메르스 사태에 책임을 지고 ‘감봉’ 징계를 받기도 했다. 2017년에는 ‘실장’을 건너뛰고 곧바로 두 단계나 승진해 차관급 본부장이 됐다.

아직도 중국이 문제다. 확진자와 사망자 통계를 믿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세계 각국에서 터져 나온다. ‘처음 코로나바이러스 위험을 알린 우한병원 의사 리원량의 입을 막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크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의 성숙한 역량으로 더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전 사스와 메르스, 신종 플루를 통해 우리 사회가 경험했고 극복한 역량이 있다. 정부와 민간이 활발하게 소통하고 시민들 각자의 현명한 대처도 중요하다. 불필요한 불안감을 확대하지 않는 언론 역할도 요구된다.

군대는 늘 위기에 대비하며 존재하는 조직이다. 작은 징후가 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위기관리에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투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지만,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에 그 의미가 담겼다. 상황을 신속히 공유하고 모든 조직원이 한몸처럼 움직여 강력한 조직력을 발휘해야 한다.

군에서 발생한 사고 가운데서도 소통보다는 사고 초기 문제를 덮으려다 오히려 문제를 키운 경우는 없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아픈 곳을 드러내야 고칠 수 있다.

과연 작은 징계라도 받으면 진급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 군에서 ‘감봉’ 징계를 받고도 파격 승진한 정은경 본부장 같은 인재를 키울 수 있을까?‘성실 실패’를 수용하지 않으면 강한 군대를 키우기 어렵다.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극복해가며 실무를 익힌 인재를 기르기 어렵다. 작은 사고라도 날까 전전긍긍하는 군대가 몸을 던져 국가 위기를 막아내기란 어렵다. “많은 불행은 난처한 일과 말하지 않은 채 남겨진 일로 생긴다.” 도스토옙스키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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