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보다 큰 너의 잠재력 원해” Z세대 움직인 영국 모병 광고

입력 2019. 12. 06   16:47
업데이트 2019. 12. 0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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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군 홍보에 필요한 ‘빼기의 미학’


1914년 英 ‘로드 키치너’ 포스터
모병광고 전형적 스타일 자리 잡아
미군 ‘샘 윌슨’ 편도 키치너 스타일 

 
英 육군 고정관념 버린 홍보 눈길
단편적인 애국심 호소 문구 탈피
젊은 층 성향과 트렌드 맞춘 카피
군더더기 빼면 메시지 더 돋보여 


영국 육군의 ‘육군은 당신이 필요합니다’ 캠페인 시리즈 (2019)
 필자 제공
영국 육군의 ‘육군은 당신이 필요합니다’ 캠페인 시리즈 (2019) 필자 제공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를 하는 나라에서는 군인을 직업으로 선택하라는 광고를 한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거의 해마다 모병 광고를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외국의 모병 광고를 보면 메시지의 패턴이 눈에 띄게 바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은 애국심에 호소하는 내용이 모병 광고의 핵심 메시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애국심을 가슴으로만 느끼게 하고 젊은이의 성향이나 트렌드에 맞춘 카피나 비주얼로 메시지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영국 육군의 ‘육군은 당신이 필요합니다(Your Army Needs You)’ 캠페인(2019)에서는 젊은이들이 약점이나 결함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징병관의 눈으로는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신문광고와 옥외광고로 강조하며 입대를 권고했다. 영국 육군은 16~25세의 Z세대를 대상으로 ‘고정관념을 넘어(beyond stereotypes)’ 다른 관점에서 지원자의 잠재력을 발견한다는 모병 광고 캠페인을 전개했다. 젊은이의 약점이나 결함으로 인식되는 속성들을 아예 헤드라인으로 부각했다. 광고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자기 위주의 밀레니얼들(Me Me Me Millennials)”
“학교 인기 스타들(Class Clowns)”
“게임에 빠진 녀석들(Binge Gamers)”
“전화 좀비들(Phone Zombies)”
“스노플레이크들(Snow Flakes)”
“셀카 중독자들(Selfie Addicts)”

여기에서 ‘스노플레이크’란 주변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젊은이를 가리키는 영국 사회의 신조어다. 자기 집착이 강해 쉽게 기분이 상하기 때문에 날씨 변화에 따라 쉽게 녹는 ‘눈송이(snowflake)’와 같다는 뜻이다. 약점과 결함을 드러낸 헤드라인 아래에 문제적 인물을 배치하고 나서 “육군은 당신과 당신의 ( )이 필요합니다”라는 카피를 덧붙이는 구조다. 괄호 안의 카피는 징병관이 발견하는 강점이다. 징병관은 자기 위주의 밀레니얼 세대에게서 ‘자기 확신(self-belief)’, 학교 인기 스타들에게서 ‘영혼(sprit)’, 게임에 빠진 녀석들에게서 ‘역동(drive)’, 전화 좀비들에게서 ‘집중력(focus)’, 스노플레이크들에게서 ‘연민(compassion)’, 셀카 중독자들에게서 ‘자신감(confidence)’이라는 강점을 발견한다는 것.

현재 영국 육군이 5000여 명 줄어든 상황에서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을 발견하라(Find where you belong)”고 하는 캐치프레이즈로 메시지가 마무리되면 젊은이들의 약점도 강점으로 바뀔 것 같다. 괄호 안의 내용을 숙고해 보는 과정을 통해 젊은이들은 직업으로서의 군인이라는 일자리 찾기를 시도할 것이다. 자기 위주라는 결함은 자기 확신감이나 진배없고, 전화 집착이라는 결함은 집중력의 원천이며, 셀카 중독이라는 결함은 자신감의 표출과 같다고 하는데, 이런 메시지를 보고서도 허투루 지나칠 젊은이는 많지 않을 듯하다.


영국군 포스터 ‘로드 키치너’ 편 (1914)  필자 제공
영국군 포스터 ‘로드 키치너’ 편 (1914) 필자 제공


이 캠페인에서는 모병 광고의 전형으로 유명한 키치너 스타일의 삽화에 주목해야 한다. 영국군의 모병 포스터 ‘로드 키치너’ 편(1914)에서는 영국의 전쟁영웅인 로드 키치너(Lord Kitchener)가 등장해 정면을 응시하며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고 있다. 키치너는 1898년 아프리카 수단의 옴두르만 전투에서 승리해 명성을 얻은 영국 육군의 원수다. 아티스트 알프레드 리트(Alfred Leete)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모병 포스터를 만들면서 인물의 손가락이 앞을 가리키는 비주얼과 “당신이 필요합니다(Wants You)”라는 카피를 조합한 과감한 레이아웃을 채택했는데, 이런 시도는 세월이 흐를수록 모병 광고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저 유명한 미군의 모병 광고 ‘샘 윌슨’ 편(1917)도 키치너 스타일이다. 미국의 삽화가 제임스 플래그(James Montgomery Flagg)는 고심 끝에 정육업자 샘 윌슨(Sam Wilson)을 모델로 써서 정면을 응시하며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도록 했다. “미 육군은 당신이 필요합니다(I want you for U.S. Army)”라는 헤드라인도 거의 유사하다. 이 광고는 1917년 4월 6일 발행된 ‘TIME’지 특별호의 뒤표지에 실린 이후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미군을 대표하는 포스터로 활용됐고, 샘 윌슨은 ‘샘 아저씨’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 광고가 나간 다음 1918년까지 400만 부 이상의 복사본이 유통됐다.

영국 육군의 ‘육군은 당신이 필요합니다’ 캠페인은 젊은이를 고정관념으로 판단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잠재력을 발굴하려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캠페인에 열광한 영국인들이 많았지만, 일부 젊은 층에서는 젊은이의 행동에 대한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을 이용했을 뿐이라고 비판하며 이런 접근 방법 자체가 웃기는 발상이나 다름없다면서 메시지의 의미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광고들은 모병 광고 메시지의 패턴을 새롭게 제시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병 광고나 홍보물에서는 애국심을 과도하게 강조해 왔다. 군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지나치게 많이 나열한 경우도 많았다. 군의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나 홍보물은 전하려는 메시지가 너무 많은 게 흠결이다. 하지만 영국 육군의 광고에서는 애국심을 과도하게 강조하지도, 혜택을 복잡하게 나열하지도 않았다.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고려해 그들의 감각에 맞춰 메시지를 단순화시켰다. 광고나 홍보에서 더 이상 뺄 수 없을 때까지 군더더기를 없애는 빼기의 미학을 고려했을 때 핵심 메시지가 더 부각된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군 관련 홍보 메시지에서도 ‘빼기의 미학’을 고려했으면 한다. 그때 비로소 더 높은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광고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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