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희정 문화산책] 소반과 옻칠

입력 2019. 11. 28   14:39
업데이트 2019. 11. 2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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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희 정 
상명대학교 박물관장
하 희 정 상명대학교 박물관장


제주도 본태박물관 1관에는 우리나라 전통 공예품이 전시돼 있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정면의 벽면 가득 원형에서 12각형까지 다양한 형태의 소반(小盤)을 볼 수 있다. 음식을 차려내거나 책 등을 올려놓고 볼 수 있는 것을 상(床)이라 하고, 밑받침으로 사용하거나 음식을 나를 때 쓰는 것을 반(盤)이라고 부른다. 부엌에서 음식을 담아 방으로 옮기는 기능을 가지면서 방안에 들어와서는 그대로 식사를 할 수 있으므로 우리나라에서는 상과 반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소반으로 통칭한다.

용도에 따라 소반의 규격이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인 소반의 상판 너비는 50cm 내외다. 부엌에서 대청마루, 안방, 사랑방 등으로 음식을 운반해야 하는 한옥 구조에 적합하게 어깨너비를 넘지 않는 규격을 가지고 있다.

소반 다리의 높이도 30㎝ 내외로 소반을 들어서 옮기거나 앉아서 음식을 먹기에 적당하다. 좌식 생활에 알맞은, 사람을 생각한 인체공학적 구조다. 다리 모양도 개다리를 닮은 구족반(拘足盤), 호랑이 다리 모양을 한 호족반(虎足盤), 말의 다리와 같은 마족반(馬足盤), 다리보다는 기둥의 역할을 하는 일주반(一株盤) 등 특색 있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생산지에 따라서 해주반·나주반·통영반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특히 4개의 다리 대신 넓은 판각(板脚) 2개가 있는 해주반은 양쪽의 판각에 투조(透彫)가 돼 있어 표면의 칠과 함께 소박한 소반이 일상의 밥상을 벗어나 하나의 조각 작품으로 화려하게 되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반 표면은 주로 옻칠이 돼 있다. 옻칠은 옻나무 가지에서 뽑은 수액으로 만든 천연 도료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색되지 않는 반영구적인 채색 방법으로 장식 효과와 함께 나무가 뒤틀리지 않게 잡아주고 산과 알칼리에 부식되지 않게 하며 방수·방충·방부·절연 기능까지 가지고 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생활용품이다 보니 예전에는 집집마다 여러 개의 소반을 가지고 있었다. 밥상의 정형이라고 할 수 있는 실용적이면서 튼튼한 통영반이 주를 이뤘고 해주반이 더러 있었다. 오래된 소반들의 칠이 벗겨져 흠이 생기면 옻칠을 전문으로 하는 분들이 방문해 소반들을 즐비하게 늘어놓고 칠을 해주시곤 했다. 분명히 불투명한 검은 색의 칠을 했는데, 마르면서 붉은 기가 돌고 윤기가 흐르며 투명해지는 그 색감이 어린 마음에도 너무 신기하고 마음에 들었던지 옻나무 수액의 독특한 향에 개의치 않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통영은 나전칠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통영에 부임했을 때 12공방을 설치했고 그중 하나가 나전칠기를 생산하면서 지금까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통영에 가면 옻칠 회화를 감상할 수 있는 옻칠미술관이 있다. 전통 나전칠기를 포함해 구상미술에서 추상미술까지 많은 작품이 전시돼 있는데 옻칠과 나전(螺鈿)이 만나 펼쳐지는 옻칠 회화를 감상하면서 소중하고도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옻칠미술관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통영의 바다를 독자들도 꼭 감상하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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